홍상수 감독의 하하하는 너무 유쾌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테리아의 옆구리를 찔러대며 키득키득 웃어대느라 혼났다.

물론 홍상수 감독의 초기작이었던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이나 강원도의 힘 오수정 등은 나의 어린 시절에 꽤 큰 인상을 남겼고 매우 훌륭한 작품이라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내가 인생을 보는 눈이 그리 복합적이거나 다면적이지 못해 다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후 포항의 한 극장에서 갓 입학한 02학번 후배와 함께 생활의 발견을 보고 나서는 너는 어려서 아직 잘 모를거라며 혼자 북부해수욕장을 거닐며 몇번이나 되새김질해가며 웃어댔던 기억이 있다. 특히 마지막에 추상미가 점쟁이 말을 듣고 도망치듯 남편에게 내빼는 장면이 배꼽빠지게 웃겼다.

그 뒤 평택의 한 극장에서 몇 중년 커플과 앉아서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보았는데 거기에 나오는 교수들의 작태가 너무 한심스러워 한동안 남자교수들을 가소롭게 바라보기도 했다.

그로부터 홍상수의 몇편의 영화들은 새로울 것도 없이 밍기적 거리는 것 같았는데 그래도 해변의 여인에서 고현정의 변신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 키가 너무 크죠. 나 얼굴이 너무 크죠. 하며 서슴없이 "잘라버리고 싶어"라고 말할때 오늘의 거침없는 미실 고현정의 싹을 보았달까.

그리고 작년 늦봄에 개봉한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생활의 발견 이래 최고로 재밌는 영화였고 이어서 올해 하하하는 그야말로 홍상수 영화에 어떤 방점을 찍은 것 같다. 이토록 유쾌하고 귀여운 영화를 만들다니 홍상수도 이제 살만해졌나 보다.

홍상수 영화는 볼때는 너무 즐기지만 보고나서는 그다지 할말이 없는데 그래도 이렇게 한가지씩 내 당시 상황과 맞물려 한줄 인상을 남겨주곤 하는 것 같다.

이번 하하하에서는 홍상수 영화중에 처음으로 마음에 쏙드는 여자 캐릭터가 나왔다는 것. 아 문소리의 갱상도 사투리와 캐릭터는 너무 리얼하고 귀여워서 넘어가는 줄 알았다. 게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윤여정 여사님까지 등장해 주셔서 보는 내내 어찌나 행복하던지.

그리고 여자의 아양과 남자의 수작을 어디서 저렇게 잘도 잡아냈는지, 김상경이 문소리가 신는 신발만 봐도 귀엽다는 대목에서 빵 터졌다.

누가 나랑 테리아 사이에 도청장치를 달은 것인지... 이제 내가 신는 조그만 신발만 봐도 눈물날 것 같다는 테리아의 귀여운 수작:)을 들을 기회는 물 건너 가버렸다.

그래도 그런 귀여운 멘트가 그리워질 때마다 홍상수가 생각날 것 같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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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샨티퀸 트랙백 0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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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2010.07.12 03:03 신고

    지난 목요일, 해야할 게 산더미인데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의욕상실병에 걸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한국영화를 내리 세 편을 봤다는... 하나는 '하녀'였는데 별로, 다른 하나는' 어떤 방문' 이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이선균이 나왔다길래 봤죠. 그건 세편의 연작이었는데 이선균 나온 것보다는 차라리 일본 감독이 만든 영화가 훨씬 더 나았어요. 그 날 본 영화들 중에 최고는 '하하하'였죠. '너 그랬니? 정말 좋았겠다~' '응, 정말 그랬어' 하는 만담 같은, 사실 별로 좋지 않은 두 사람의 스토리 속에서 감독의 의도가 느껴져 정말 '하하하' 웃게 되더라는...^^

    사실, 아직 여기서는 거기서같이 좋은 친구를 만나지 못해.... 여기서의 대화가 '하하하'라 참....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였어요. ^^

    언니도 봤다니 반갑네!^^

  2. addr | edit/del | reply 샨티퀸 2010.07.12 13:23 신고

    으앙 밥이다^^ 밥은 잘 챙겨먹고 있는지... 며칠전 네이트대화명 옆에 케잌이 뜨던데 생일축하 인사 하나 제대로 못 전해 미안해요 :) 너무너무 보고싶고, 밥님 때문에 가끔의 업데이트는 꼭 지킬께요.

  3. addr | edit/del | reply ㄸㄹ 2010.07.17 02:05 신고

    으잉 저도 이거 재밌게 봤어요! 언젠가 통영에 가서 꿀빵도 먹고 복집도 가고 나폴리모텔도 보고 싶어요 음하하하

    • addr | edit/del 샨티퀸 2010.07.18 01:36 신고

      으앙 따라양. 곧 당신 공연장에 나타나리라! 나는 영화를 보던 중에 내가 통영에서 영화에서 나오는 짓거리를 했더라는 묻은 기억을 찾아냈더랬죠 :)))

  4. addr | edit/del | reply 고래배 2010.07.17 07:18 신고

    대학때 자네가 생활의 발견 (누구지? 팀 마니또같은 하면서 어떤 후배랑 같이 보고 왔잖어?) 보고 와서 너무 좋다고 너무 좋다고 너무 좋다고 했던 기억이 나서 재밌네 흐흐 마지막에 테리아씨 사진도 흐흐

    • addr | edit/del 샨티퀸 2010.07.19 12:43 신고

      맞아맞아. 키가 크고 엄청 순수한 친구였는데 이름은 기억이 안 나네... ^^ 그 친구도 지금쯤 나처럼 홍상수 영화를 보며 하하하 웃어재끼고 있겠지? ㅎㅎㅎ 당신도 대단한 기억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