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olutionary Road]

특별한 무대 위에 주인공이기를 바란다. 남들과 똑같은 삶은 죽기보다 싫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그래서 늘 여기가 아닌 그 어느 곳에 가면 나의 삶은 더 빛날 것이라고, 더 생생하게 살아 있을 것이라고 막연한 환상을 남몰래 키워나간다. 그 환상의 농도는 거의 신앙에 가깝고 그 증세는 열병과도 같다. 평상심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일이란 피 터지는 내적 갈등 뒤에 나온 표정관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일상을 버티다 만나는 하룻밤의 정사나 외도 따위는 해프닝에 불과할 뿐 삶의 궤도까지 바꿔놓지 않는다.



샘 멘데스의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여주인공 에이프릴, 비단 그녀만의 이야기는 아닐 거다. 에이프릴은 여기가 아닌 그 어디이기만 하면 되는 그곳, ‘파리에서는 처음 사랑에 빠졌던 그때처럼 다시 가슴 뛰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남편 프랭크를 설득한다. 그러나 직장에서의 인정과 승진은 프랭크로 하여금 현실을 선택하게 만들고, 설상가상 에이프릴은 임신을 하게 되면서 파리행은 좌초되고 영화는 비극적 결말을 맺는다.




 

재밌는 것은 1년 뒤 샘 멘데스 감독은 어웨이 위고라는 영화를 발표했는데그는 자신의 전작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부부를 비웃기라도 하듯 주인공 커플을 가볍게 여행길 위에 올려놓는다에이프릴의 발목을 잡았던 바로 그 상황임신 6개월이라는 뒤뚱거리는 몸을 이끌고 말이다나의 서른넷에 부모가 될 준비는커녕현실감각도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기본적인 것도 모른 채곧 태어날 아이와 미래에 대한 불안을 그대로 안고 길을 떠난다.



어쩌면 감독은 풍요의 사회라 불리던 미국의 1950년대보다 모든 미래가 불확실한 불안의 시대 2010년이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물론 이동과 거주에 대한 선택권이 넓어졌다고 우리가 더 행복해졌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물음이지만 말이다.


[Away we go

우리는 모두 여행을 꿈꾼다누군가에게는 자아의 신화를 찾아 떠나는 일생일대의 도전일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호기심 가득한 유희일 수도 있고, 디로 갈지 몰라 떠도는 방황일 수도, 질식당할 것 같은 현실에 대한 도피일 수도 있다.


나도 언제나 여행을 꿈꿔왔다. 처음은 아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길에 올라 전 재산을 탕진하기를 반복한지 몇 차례. 여행의 끝을 확인해야 하는 그 허무함과 집도, 직장도, 통장잔고도 제로인 상태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현실의 절박함도 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도 여전히 떠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나는 또 한명의 에이프릴이다. 더 늦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언제나 나를 재촉한다. 30년 넘게 입어온 이 한국사회라는 문화의 옷이 내 몸의 일부가 되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고 말이다.

 

터키-그리스 두 달, 계획에 없던 폴란드-헝가리-슬로바키아-오스트리아에서 한 달, 포르투갈-스페인-모로코로 두 달 남짓 이어졌던 긴 여행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American Beauty

떠나기 전 생각한다고개를 치켜 올리고 당당하게 걸어야지. 나의 롱 허리와 굽은 어깨를 바로 세우고 무심하게 말해야지아무것도 모르는 백치가 되어야지. 강렬한 태양 앞에 얼굴을 가리지 말아야지. 소금기 가득한 바닷물에 몸을 띄워야지. 사막의 침묵에 귀 기울여야지. 마음껏 취하고 미친 듯 춤 춰야지. 바보같이 웃어야지. 다가오는 모든 인연에 마음을 활짝 열어야지. 다른 사람이 되어봐야지. 그렇게 또 다른 나를 만나고 돌아와야지...



첫눈이 오기 직전의 오후였다. 차가운 공기가 거리를 감싸고, 비닐 봉지 하나가 날아오른다. 놀아달라는 아이처럼 그렇게 15분 동안이나 춤을 춘다. 그때 알았다. 세상은 온통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샘 멘데스의 어메리칸 뷰티 한 장면이다. 그렇다. 영원으로 이어질 그 순간을 위해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Posted by 샨티퀸 트랙백 0 :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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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2015.01.13 16:15

    비밀댓글입니다

  2. addr | edit/del | reply 샨티퀸 2015.01.13 16:37 신고

    우왕 어떻게 알고 왔지? :) 아이 신나라!

  3. addr | edit/del | reply 허민 2015.01.13 19:11 신고

    심취해 읽다가 밥태웠다ㅜ

  4. addr | edit/del | reply sealamp 2015.01.14 10:15 신고

    매우 기대됨!! 허이차!

  5. addr | edit/del | reply 광호 2015.03.24 20:19 신고

    지금쯤 어디에 있으려나? 간만에 놀러왔는데 완전 염장 지르긴데^^. 부럽다, 상화야. 전자책 출판사 만들었는데 필자로 모시고 싶네 그려ㅋ. 또 놀러올게^^.

  6. addr | edit/del | reply 샨티퀸 2015.03.24 23:11 신고

    아, 너무 반갑다! 지금은 연남동에 있죠. 또 놀러오고 얼굴도 보자!

    • addr | edit/del 광호 2015.03.25 10:04 신고

      연남동으로 이사한 건가? 육아에 일에 지쳐서 빠른 시일에는 못 보겠지만 보고 싶네 그려ㅋ. 핸드폰도 두 번인가 고장나서 전화번호들을 다 날려버렸는데 여기로 연락하면 되겠네.ㅎ 독자로서 좋은? 여행기 기대합니다~

  7. addr | edit/del | reply 샨티퀸 2015.03.25 16:38 신고

    고마워. 홍대 언저리에서 함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