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이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계속해서 숙박연장을 한다


구시가지 바자르피에르 로티 언덕니샨타시지한기르 등지를 쏘다니고 페리 타고 아시아 지구를 갔다가도 어김없이 갈라타지구로 돌아온다. 좌판 위의 알록달록 히피 패션 옷가지와 가방들계단과 길 모퉁이마다 걸터앉아 맥주를 홀짝 거리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거리 가득 자유로움을 느낀다쿨하고 힙한데 위화감이 없다그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하루는 독일에서 온 레이나와 저녁을 함께 했다치첵 파사지에서 저녁을 먹고 이스티클랄 거리를 거쳐 뒷골목으로 가니 금요일이라 거리는 온통 클럽 분위기다음악과 조명에 취한 젊은이들은 소리 지르며 웃고 마시며 춤을 춘다우리는 크고 작은 펍을 지나 갈라타타워 아래 골목 snog에 자리를 잡았다매일 하루를 마감하는 펍이다.

 

안과 밖 경계가 없다문가에 놓인 테이블이 길거리와 맞닿아 인기가 좋다사람들이 실내 뿐 아니라 펍 계단과 길바닥 위에 앉아 자연스레 공간이 확장된다터키 현지인과 여행자들이 섞여 앉았다매스컴 학회 세미나에 왔다는 덴마크와 브라질 저널리스트 두 명까지 합석해 건배를 외친다. ‘쉐레페!’ 우리 대화의 주제는 언제나 같다이스탄불이 얼마나 매력 있는지이스탄불이 가진 얼굴이 얼마나 다양한지 서로 경쟁하듯 얘기한다.



레이나도 나처럼 구시가지에서 머물다 숙소를 옮겨왔다레이나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또 한번 구시가지와 갈라타지구의 차이를 발견했다. “술탄아흐멧이랑은 분위기가 너무 달라술탄아흐멧 호스텔에서 잘 때 좀 추운 거야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하나 더 달라고 얘기했더니그 호텔 매니저가 레이나 추워내가 안아줄까하며 담요를 내 어깨에 걸쳐 주는 거 있지?” 라며 키득키득 웃는다.

 

우리 호스텔에서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풍경이다. 얼터너티브한 삶을 추구하는 친구 셋이 150년 가까이 된 건물을 임대해 운영하고 있다. 나는 그중 여자 셀린에게 반했다펑키하게 머리 옆면을 밀은 헤어스타일도 그녀의 귀족스런 분위기를 가리지 못했다수줍은 듯한 눈웃음중저음 보이스여유 있는 몸짓 하나하나가 얼마나 우아한지 모른다그런 그녀가 주는 여행 정보는 알짜배기다이를테면 카리예 뮤지움에 간다면 그 옆에 Asithane 레스토랑에 가서 커피 한잔이라도 하고 오라는 귀띔과 모던 뮤지움에서 열리고 있던 on the road라는 사진전에 대한 정보 같은 것들이다.

 

레이나는 터키 이민자들과의 갈등과 사회통합이 독일의 중요한 사회 과제라며독일 사람들이 자신들의 구성원인 터키 이민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터키에 한 번씩은 꼭 와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첫날밤 도미토리에서 만난 다섯 명의 독일 고등학생도 독일 정부에서 주최한 독일-터키 문화교류 프로그램에 3주 동안 참가한 학생들이었다이민자 사회통합을 위한 독일 사회의 고민과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멀리 떨어진 두 나라에서 온 레이나와 나는 이구동성으로 이스탄불이 진정 최고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그 면면이 너무 다양해서 최소한 몇 달은 머물러야 알 수 있을 것 같다며 다음에 올 때는 갈라타 근처에 방 하나를 얻어 함께 지내자고 한껏 목청을 높였다.





 

주말이 되자 지난주에 이어 LGBT페스티벌에 모여든 젊은이들로 거리는 온통 레인보우 물결이다. 2002년부터 장기 집권한 정의개발당 총리 에르도안은 2011년 총선 이래 급격하게 이슬람 권위주의로 돌아섰다고 한다. 10시 이후로는 술을 팔지 못하게 하고, 공공장소에서 키스를 못하도록 경고하는가 하면 LGBT에 대한 권리 제한도 공공연하게 언급했다. 2013년 게지공원 재개발 반대로 시작된 생태주의자들의 평화집회가 정부의 강경진압으로 범국민적인 반정부시위로 확산된 배경에는 그간 누적된 표현의 자유 제한과 인권 침해에 따른 불만이 증폭된데 있다.

 

경찰들은 튜넬광장으로 이어지는 골목을 모두 에워싸고 있었지만 튜넬광장에서 갈라타타워까지 이어지는 길은 온통 축제분위기다무지개 깃발이 춤추고손으로 만든 현수막과 피켓이 여기저기 나부낀다. 바닥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기타치고 노래한다동성애자들은 키스를 하고 광장에 모인 젊은이들은 서로 양볼 인사를 하고 포옹을 하며 연대와 우정을 표한다무슬림 사회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자유로워 딴 세계에 온 것만 같다이스티클랄에서부터 튜넬광장 사이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시위행렬을 보면 지금 터키와 이스탄불의 이슈가 무엇인지 금세 파악된다갈라타지구의 이런 풍경은 불과 1-2년 사이에 생긴 변화라고 한다.

 

나는 갈라타지구에 매료되었고, 눈이 완전 돌아갔다. 유럽과 중동 문화가 교차하면서 만들어낸 긴장과 자극이 이곳에 활기를 불러 일으켰다. 게다가 여행자와 이민자가 끊임없이 모여들면서 이곳은 늘 새로운 것들과 뜨거운 열기로 가득하다. 나는 이곳에서 요즘 가장 핫하다는 베를린을 능가하는 기운을 느꼈다. 숙소 앞 알바 갤러리에서 만난 호주에서 온 그녀가 말했다. “너도 조심해, 한번 빠져들면 벗어날 수 없어. 나도 8년째 이러고 있잖아.” 이스탄불에 반한 그녀는 8년 동안 한번도 이스탄불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에게 말한다. "여기 너무 좋아, 마치 내가 사는 동네 홍대 같아. 우리 동네도 이렇게 길거리 예술이 발달했고, 자유분방하고 세계 트렌드가 모여드는 곳이거든" 이렇게 말하자, 그녀의 눈이 반짝 빛났다. 너희 동네도 이렇게 역사적이니?” 묻더니 갈라타 지구 주변의 흑백 사진들과 역사책들을 보여준다.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때 알았다.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인지. 힙스터들의 아지트 아니었다. 잠깐 힙했다 사라지는 그런 공간이 아니었다. 유럽 문화를 흉내 내는 곳도 아니었다



1261년 비잔틴제국 미카엘 8세가 제노바에 해상 무역과 자치권을 내 준 이래로 갈라타지구는 언제나 해방구 역할을 해 왔다. 오스만제국이 들어선 이후에도 제노바인들과 유럽인들은 갈라타지구에 모여 살았고 그들의 문화는 구시가지 무슬림 생활상과 크게 달랐다고 전해진다. 이 자유로움 마저 오래된 전통을 갖고 있었다. 수세기를 이어온 이 지역 고유의 자유본능인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여인숙을 운영하고 아르메니아인들은 대부분 상인이거나 환전상이며 유대인들은 연애 사업의 매개자 노릇을 하는데 젊은이들은 방탕함에 있어서 감히 따를 자가 없다. 갈라타 여인숙과 술집이 200곳이나 되며 이교도는 이런 업소들을 찾아 음악과 술을 즐긴다. 여인숙들은 안코나, 무단야, 스미르나, 테네도스의 술로 손님들을 끈다. 갈라타의 여인숙들에는 온갖 재주꾼과 춤꾼들, 광대들이 모여들어 주야로 즐기기 때문에 귀나하(유혹)라는 말이 특히 잘 어울린다. 나는 이 지역을 지나다 맨머리에 맨발에 많은 남자들이 술에 취해 길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으며 일부는 노래로 자신들의 상태를 알렸다. “나는 붉은 포도주를 마셨다, , 취한다, 취한다! 나는야 감옥의 죄수, , 미쳤다, 나는 미쳤다!” 그러면 옆에서 다른 사람이 이렇게 화답했다. “내 발은 여인숙으로 가네, 다른 곳 말고, 내 손은 술잔을 꽉 잡네, 다른 것 말고, 설교는 그만두시오. 내 귀는 술병의 속삭임밖에 듣지 못하니” - John Freely, Imperial Istanbul 번역본 中

 

1630년대 갈라타지구에 대한 에울리야의 한 여행자의 기록에 나타난 묘사이다. 어떤가, 오늘날 갈라타지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 아닌가!

 



Posted by 샨티퀸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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