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하게 갓길을 걷고 있는데 정류장도 아닌 곳에서 버스 한대가 섰다. 기사는 말하지 않아도 내 사정을 알 법하다는 듯이, 어디를 가냐고 묻지도 않고 타라고 했다. 얼마냐고 묻는데 차비도 받지도 않고 그냥 앉으란다. 가다가 건널목이 있거나 갈아타기 쉬운 곳에서 내리라는 눈치다.


버스는 수도교를 지나 파티흐 방향으로 달렸다. 관광 지구에서 보지 못했던 낯선 풍경들이 펼쳐졌다. 전통 무슬림 마을인 듯 길 위에 여자들은 모두 단단히 히잡을 하고 있었다. 


한 정류장에서 집시처럼 보이는 여자가 아이를 들쳐 메고 남자와 함께 버스에 오르려 했다. 그러자 나에게 천사 같았던 버스기사가 무섭게 성을 내며 집시 가족을 쫒아냈다. 오래 입어서 거의 다 찢어져 가는 인도풍 옷에, 꽃무늬 롱스커트를 입은 내 모습도 그녀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기사는 나 같은 이방인은 반기고 자기 사회의 한 구성원인 집시 가족은 매몰차게 대했다. 다행인 것은 터키인들이 버스기사를 나무라며 집시 가족 편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나는 기사에게 인사를 하고 버스가 많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내려 반대편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옆자리에 있는 아저씨에게 방향을 재확인하자, 그는 스마트폰 구글 번역 앱을 써가며 친절히 답해줬다. 잠시 후 창밖으로 조금 전에 봤던 집시와는 조금 다른 행색의 무리가 보였다. 내가 그들을 가리키자 아저씨는 시리아 난민이라고 답했다.


시리아 내전 이후 많은 난민들이 터키로 몰려들고 있다고 했다. 이스탄불에서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내가 몰랐던 세상, 알고도 외면했던 문제들이 내 눈 앞에 선명하게 펼쳐진다."

  


<산토리니, 주인공은 너야> 집시, 난민 그리고 여행자들 中







집시들의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다. 

이스탄불에 살기 시작한지는 천년도 더 된 일이다

오스만제국이 생기기도 훨씬 이전부터 집시들은 여섯 번째 언덕의 술루쿨레라는 동네에 천막을 치고 오늘날까지 이곳에 뿌리내렸다. 그들은 컬러풀한 옷과 장신구로 몸을 치장하고 음악을 연주하고, 밸리 댄스를 춘다. 핍박 속에서도 곰을 재주 부리고, 구두 닦고, 꽃을 팔며 세대를 이어왔다.

 

그랬던 이들의 터전을, 몇 해 전 정부는 도시 재개발 계획으로 고급 주택단지를 짓기 위해 하루아침에 불도저로 밀어버렸다. 술루쿨레, 발라트를 비롯한 서민들의 오래된 주거지가 파괴되면서 집시 3천명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고 한다.


빌브라인슨은 그의 여행기 발칙한 유럽산책에서 이스탄불에 대해 근사하고 신명나는 도시라고 말하며,

“ 다리 저편에는 두 남자가 시르케지 역을 향해 길을 건너고 있었는데 갈색 곰들을 줄에 묶어 번잡한 길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듯, 이들을 돌아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썼다. 


그러나 이제는 길에서 갈색 곰을 만날 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영화감독 토니 갓리프(Tony Gatlif)의 영화 라쵸드롬 이스탄불 장면이다

라쵸드롬 Latcho Drom은 집시들의 인사말로, 즐거운 여행, Safe Journey, Bon Voyage와 같은 뜻이다!












Posted by 샨티퀸 트랙백 0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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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코린 2015.02.04 15:33 신고

    멋지다. 사진도 멋지고. 아,,, 짐 싸고 싶어진다 ㅋㅋㅋ

  2. addr | edit/del | reply 교토 2015.02.04 16:25 신고

    보스포러스의 푸른 물결 따라 흔들리며 흘러가고싶은 마음을 부추기시는구먼....

  3. addr | edit/del | reply 사스미 2015.02.04 19:53 신고

    교정 들어갈게요 ㅋㅋ그들이 우리 옆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고 있어. 요즘 책 출판했더니 편집병이ㅋㅋ남언니, 최고! 피스메이커 남~! ㅋㄷ

    • addr | edit/del 샨티퀸 2015.02.04 22:20 신고

      아앙, "사스미"에서 빵 터졌어! 교정 바로 반영했습니당. 감사합니당! 사랑스러운 사슴양 :)

  4. addr | edit/del | reply 티스토리 운영자 2015.02.05 14:02 신고

    안녕하세요, TISTORY입니다. 이 게시글의 이미지가 2월 5일자 티스토리 앱 카테고리 배경이미지로 소개되었습니다. 항상 좋은 글과 사진으로 활동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addr | edit/del 샨티퀸 2015.02.05 19:03 신고

      운영자님, 안녕하세요. 매일 무심코 보던 앱 배경이미지가 블로그 사진으로 선정되는 거였군요.앞으로 눈여겨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