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프란 꽃 군생지로 알려진 샤프란볼루 구시가지는 아기자기 작고 예쁜 시골 마을이다.

마을 중앙에는 과거 유럽과 중국을 잇는 실크로드 대상들이 묵어가던 대상숙소 진지한과 목욕탕 진지하맘이 있다. 오스만시대 전통가옥 1000여 채가 잘 보전되어 있어 1994년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유독 일본, 한국, 대만 여행자들에게 사랑받는 관광지다.





라마단 절기 중이었다. 이스탄불에서는 갈라타지구에 머무느라 이틀 전 라마단이 시작이 된 줄도 모르고 있었다. 떠나기 전날까지 길에서 술 마시며 축제를 벌이는 젊은이들만 보았을 뿐이다. 내심 이스탄불 사람들에게 지금쯤 라마단이 시작되죠?” 라고 물어볼까 싶었지만 이슬람 사회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 취급 당할까봐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순수박물관에 나오는 전 외무부 장관의 대사 아내와 딸이 머리 스카프를 쓴 시골 사람들로 넘쳐나. 얼마 전에 보았네. 한 남자가 아랍인처럼 검은 차도르를 쓴 부인 둘을 뒤에 달고 베이올루로 나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이더군.”과 같은 장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은 마을에 도착했더니 온 마을이 숨죽여 라마단을 지키고 있었다시골엔 비밀이 없고 도시는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고 했던가이웃집 수저 개수까지 알고 있을 것만 같은 샤프란볼루에서는 모두 신앙에 따라또는 이웃의 시선에 따라 엄격하게 라마단을 지키고 있었다라마단은 아랍어로 '무더운 날'이라는 뜻이란다아니나 다를까한낮의 더위는 세상을 음소거해 놓은 듯 무기력하게 만들었다밖으로 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태양이다.


마을 사람들은 지쳐 보였다. 길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은 여행자들 뿐 이었다. 입에 물 한 방울 축이지 못하면서 주문한 차나 음식을 내오는 현지인들을 지켜봐야 하는 여행자들 역시 곤욕스럽긴 마찬가지다.

 



하루는 더위를 식히러 모스크(Izzat Pasa Cami)에 들어갔다. 모스크 안 중앙 홀은 남자들만의 공간이다. 이스탄불에서는 별로 개의치 않고 중앙홀에 앉아 있곤 했지만, 이 작은 시골마을에서는 왠지 여행자의 월권인 것 같아 여자들을 위한 별도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바자르 옷가게를 지키고 있던 여자 세 명이 기도하러 와 있었다. 그녀들은 나를 보더니, 동네 언니들이 어린아이 치장시키듯 내 머리에 스카프를 둘러주고 치마를 입혀 줬다. 모스크 한 구석에 교회 성가복처럼 스카프, 긴 스커트 같은 것이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 손에는 묵주같이 생긴 목걸이 타스비흐를 쥐어주며 기도하는 법을 알려줬다.

 

나는 뒤편에 앉아 그녀들이 절을 하고 오른쪽 왼쪽을 번갈아 본 뒤, 가슴에 손을 올렸다 내리고, 다시 상체를 숙인 뒤 무릎을 꿇고, 엉덩이를 올렸다 오른쪽 왼쪽 다리를 옆으로 포개는 일련의 기도 양식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더위를 피할 길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루는 흐드를륵 언덕에 올라 커피 한잔을 마신 뒤, 마을을 벗어나 고원을 헤매고 다니다 협곡 아래 커다란 터키 국기를 발견했다. 깎아지른 듯한 두 개의 절벽 아래 위치한 어마어마한 규모의 카페였다. 그곳에는 마치 라마단을 피해 멀리 도망쳐온 듯한 젊은이들이 차를 마시며 데이트 중이었다. 흐르는 계곡 물줄기 소리를 들으며 해가 사그러들기를 기다렸다가 마을로 돌아왔다. 해가 졌음을 알리는 에잔이 울리자, 마을 사람들은 음식을 먹으며 활기를 찾았다.

 

샤프란볼루에서 이렇게 며칠을 보내고 났더니, 더 이상 더위를 피해 숨을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미국 저널리스트 연수에 참석하느라 출국 전 얼굴도 보지 못한 친구 Y에게서 연락이 왔다. 연수에서 만난 터키 친구가 앙카라에 있으니 연락을 해 보라는 것이었다


공중전화를 찾아 Y 친구 귤센에게 전화를 했다. 방송기자답게 상기된 하이 톤에 구슬 굴러가는 것 같은 기분 좋은 목소리였다. 앙카라에 오면 꼭 연락을 하란다. 인사치레였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 기회를 덥석 잡았다. “원래 여기서 카파도키아에 바로 갈 계획이었는데, 너를 보러 앙카라에 갈게.” 하고 이틀 뒤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전화를 끊기 전에 덧붙였다. “근데, 나 너네 집에서 자도 되겠니?"




나는 그녀가 혼자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약속을 컨펌하는 메일을 한 번 더 주고 받는 과정에서 그녀가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혹시라도 일 때문에 약속 시간에 늦게 되거들랑 기다리지 말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바로 오라는 것이었다. 집주소와 대략적인 택시요금까지 안내해주며 집에 엄마와 동생이 있을 거라는 내용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못한 걸까. , 왠지 국제적인 민폐녀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빈손인 것이 떠올랐다. 한국에서 아무것도 챙겨오지 않았으니. 숙소 주인인 야스민에게 물었다. “터키 가정집에 놀러 갈 계획인데, 어떤 선물을 사 가는 게 좋을까요?그녀가 반색하며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로쿰! 터키쉬 딜라이트! 터키 사람들은 로쿰을 사랑하고, 샤프란볼루 로쿰은 터키에서도 최고로 쳐주니까!

 

로쿰 2킬로를 샀다. 내 짐만큼 무거운 로쿰을 들고 나는 앙카라로 향했다. 함께 도미토리를 썼던 일본 커플 켄과 치히로와 앙카라까지 함께 했다. 세계여행중인 그들은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 하투샤로 떠났다. 더운 날씨에 기원전 이천년 전 유적의 흔적을 찾아서. 그들과 인사를 하며 그 긴 여행 중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그들의 곧은 의지에 경의를 표했다나는 앙카라 귤센네 집으로 간다

안녕, 무더운 날(라마단)의 샤프란볼루













Posted by 샨티퀸 트랙백 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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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2015.02.12 16:07

    비밀댓글입니다

  2. addr | edit/del | reply 샨티퀸 2015.02.12 16:24 신고

    저는 여름에 여행을 했기 때문에 겨울 터키를 보는 로망이 생겼답니다. 물론 봄과 가을도 환상적이겠죠. 얼마전에 터키 친구 통해 아나톨리아 반도에 아몬드꽃 핀 장면을 사진으로 봐서 또 터키앓이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