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되어 귤센과 함께 앙카라 성을 찾았다. 귤센과 둘이 나가겠구나 싶었는데 안네와 함께였다. 둘이 나가길 바랐던 것이 아니었다. 단지 친구가 집에 오면 엄마가 해주시던 음식을 잘 먹고 놀다가도 밖에는 친구와 따로 나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던 한국에서의 내 생활습관 탓이었다. 순간 엄마와 안네 모두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앙카라 성을 둘러본 뒤 카펫과 앤티크 샵들이 있는 전통거리로 향했다. 서울로 치면 인사동 같은 곳이다. 거리는 주말 나들이 나온 앙카라 현지인들로 붐볐다. 잠시 후 귤센 친구 셀린이 합류했다. 도보행진으로 이즈미르에서 앙카라까지 걸어왔다는 그 친구다. 밝은 핑크빛 티셔츠에 화려한 악세사리, 숏커트가 인상적이었다.     


셀린은 이즈미르 출신인데 이즈미르는 선거 때마다 야당이 우세인 지역으로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도시로 꼽힌단다. 귤센은 당시 도보행진하던 셀린을 인터뷰했고, 그 내용은 생방송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네가 사회운동을 하면 내가 인터뷰 할게” 대학시절 기자 준비를 하면서 농담처럼 해 왔던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고 둘은 회상했다.  

 


 

셀린이 들려준 도보행진 이야기는 이렇다. 대행진 계획은 20112월, 온라인을 달군 Revolt Anatolia 영상에서 발단되었다. 눈부시게 생명력 넘치는 아나톨리아 자연경관으로 시작되는 영상은 터키정부가 2023년까지 4천개 수력발전소와 댐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뒤 댐 공사를 강행하면서, 산과 계곡이 절단나고, 자연과 어울려 살던 주민의 삶이 어떻게 무너져 가는지를 담아냈다. 터키의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는 아나톨리아 자연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이 영상 메시지는 많은 젊은이들의 관심과 행동을 불러 일으켰다. 그렇게 뜻을 함께 한 젊은이들이 온라인 소통으로 아나톨리아 대행진을 기획하기에 이르렀다.  


<http://vimeo.com/21679494>


아나톨리아를 포기하지 않겠다(ANADOLUYU VERMEYECEGIZ)’는 슬로건 아래 하산케이프, 메르신, 아르트빈 등 7개 지역에서 총 11개 카라반 대열이 꾸려졌다. 이들은 2011년 5월 22일 앙카라에서 동시에 만나기로 하고 각 지역에서 보도행진을 시작했다. 셀린은 에게안 카라반 소속으로 4월 17일 이즈미르를 출발했다과연 유목민의 후예요동서양 대상들이 걸어 이동하던 실크로드 본고장다운 발상이다. 


<셀린 사진제공>


카라반은 마을을 지날 때마다 시장, 마을 회관을 찾아 행진 취지를 알리고, 마을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정부를 지지하는 시골 어르신들과 언쟁을 벌여야 할 때도 있었지만, 많은 주민들이 그들의 행진을 지지하며 반겼다고 한다.  

 

<셀린 사진제공>

<셀린 사진제공>


그러나 한달여 간의 대행진은 집결지인 앙카라를 목전에 두고 경찰들의 무력 진압으로 시내 진입이 좌초됐다. 카라반 대열은 시 외곽에 텐트를 치고 앙카라 진입까지 16일 동안 야영생활을 해야만 했다


한 달 도보행진과 보름동안 이어진 야영으로 행진단은 지쳐갔고, 언론이 주목하는 가운데 일부 인사들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운동의 성격이 변질되기도 했다고 셀린은 말했다. 아나톨리아 대행진이 정부의 댐 건설을 전면 무효화할 수는 없었지만, 사람들은 자각하기 시작했고, 그 운동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2년 후 이스탄불 게지공원 개발에 반대하는 범국민 반정부시위로 이어졌다고 한다.  


<셀린 사진제공>


"처음에 우리는 매일 30km를 걸으며 밤마다 길 위에 텐트를 칠 계획이었는데, 지나는 곳마다 마을 사람들이 먹여주고 재워주는 덕분엔 텐트는 거의 사용할 일이 없었어.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어. 나는 아나톨리아 사람들을 정말 사랑하게 됐어. 그리고 사람은 돈이 없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됐지. 돈보다 내 손에 어떤 구호호가 들려 있는지, 내 가슴 속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야. 물론 얻은 건 이것 뿐만이 아니야. 마을 사람들 성의 때문에 그들이 주는 음식을 거절할 수가 없었거든. 결국 한달동안 780km를 걷고도 몸무게가 무려 5kg이나 늘어 난 거 있지" 


지금은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셀린은 그래도 이때가 청춘의 황금기였다고 고백했다아나톨리아 대행진은 이후 다큐로 만들어져 여러 국제필름페스티벌에서 상영되며 국제적인 이슈가 되었다고 한다. 

<영상확인 https://www.youtube.com/watch?v=Kion-YmAlxk>

 

나는 단지 여행자일 뿐인데, 귤센은 나를 보고 셀린을 떠올렸다. 귤센의 청에 한 걸음에 달려온 셀린은 나를 보고 마치 동지라도 만난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녀들은 나의 여행을 현실도피나 사치로 보지 않고, 용기와 결단으로 이해해준 것이다. 그들의 응원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저녁시간이 다 되어 식당을 찾아 나섰다. 바투도 합류했다. 거리는 대목이라도 맞은 듯 붐볐다. 라마단 금식이 끝나는 시간, 해가 지기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식당마다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식당 입구에는 라마단 세트메뉴가 적혀 있었다. 주문을 하려 하자, 세트메뉴만 가능하단다.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가는 곳마다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택시를 타고 안네와 귤센이 즐겨 찾던 식당으로 장소를 옮겼다안네는 라마단마저 상술에 이용되고 있는 상황을 안타까워 하셨다.


 


해가 지고 기도시간을 알리는 에잔이 울려 퍼지자, 사람들은 일제히 낮은 목소리로 기도를 하고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안네는 물로 목을 축인 뒤, 담배를 꺼내 물고 천천히 연기를 뱉었다. 음식보다 금연이 더 곤욕스러웠다는 듯이. 식당 가득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물을 꼴깍 넘기는 그 짧은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우선시하는 가치를 위해 욕구를 다스리는 모든 행위에는 신성이 깃들어 있다. 





*아나톨리아 대행진 이야기는 여행 당시 나눈 대화를 토대로 귀국 후 주고 받은 사진, 영상, 메시지 내용으로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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