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들이 가장 인상적인 장소로 꼽는 카파도키아는 스머프와 스타워즈의 배경이 되면서 그 유명세를 더한 곳이다. 수백만 년 전 에르지예스(Erciyes)산에서 분출된 용암으로 응회암 지대가 형성되었고오랜 세월 풍화침식 작용으로 오늘날 기암괴석을 비롯한 독특한 지형이 만들어졌다화산재가 굳어 만들어진 부드러운 응회암은 바위에 구멍을 내기가 용이해바위와 동굴은 더위와 추위를 피하기 위한 주거 공간핍박을 피하기 위한 초기 기독교인과 수도자들을 위한 교회와 수도원 등으로 활용되어 왔다카파도키아는 장엄한 자연 풍광과 역사의 흔적을 찾아 나선 전 세계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터키 최대 관광지다.




 

카파도키아 게스트하우스는 오픈한 지 한 달 남짓한 동굴숙소였다. 예약사이트 평가는 최상위권인데 가격은 가장 낮았다. 숙박 예약을 하자마자 안내 메일이 도착했다.

 

한글이었다. “안녕하세요, 한국 여행자 여러분!” 으로 시작해 원활한 열기구 투어를 위해(?) 이스탄불 등지에서 미리 예약을 하지 말고 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메일에 사용된 어휘가 수준급이었다. 한국 여행자들이 벌써 다녀갔을 거라는 생각은 못 했는데한 달 사이에 이정도 안내문을 써줄 정도로 한국 여행자들과도 친분을 꽤 쌓았나보다.


버스가 괴레메에 도착하자마치 수학 여행지처럼 온 동네가 관광객들로 들썩였다픽업 나온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은 나를 보자마자 한국말로 안녕예쁘다어디에서 왔어?” 인사를 했다한국말을 쓰는 현지인을 보면 예의 환호와 탄성이 쏟아질 거라는 상대방의 반응까지 미리 계산에 깔고 있는 듯한 태도였다볼멘소리로 한마디 했다. “멜하바아 그리고안녕이 아니고 안녕하세요라고 하는 거예요우리는 지금 처음 만난 사이니까요.”

 

체크인을 마치자지도를 보여주며 투어 설명에 열심이다레드 투어그린 투어로즈밸리 투어벌룬 투어호스 라이딩 투어... 지도 한 가득줄 긋고 색깔 칠하고 길마다 투어 이름을 붙여 놨다카파도키아는 정말 투어리스틱하다사실 뜨거운 한 여름대중교통도 여의치 않은 카파도키아 일대를 자체적으로 둘러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투어 프로그램은 나름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짐짓 나는 관광객과 다른 여행자야’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부정적인 표현 중 하나가 바로 투어리스틱하다는 것이다그래봤자 나도 관광객 중 하나면서 괜히 삐딱선이다. '어떤 투어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지 않겠어!'



다음날 괴레메 마을 언덕에 올라 선셋을 보는데 한 사내가 다가왔다. 언덕 근처 호텔 주인으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동네 터줏대감이란다. 그는 다음날 아침 영화를 찍는데 엑스트라가 필요하다며, 공짜 열기구를 태워주겠다고 했다. 극 중 주인공이 터키 여행가이드이고 열기구에 탑승한 관광객 엑스트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열기구 투어는 150유로 상당이다.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스페인 커플과 함께 반신반의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론 솔깃했다. 결국 우리는 다음날 새벽 네 시 골목 어귀에 만나 함께 가기로 했다. 혹시나 미심쩍으면 그냥 돌아오자고 했다. 그날 저녁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서 주인장에게 말했더니, 그게 사실이라면 왜 자기네 호텔 사람들에게 공짜 열기구를 태워주지 않고,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모으고 있겠냐며 빈정댔다.

 

어쨌든 나는 스페인 커플과 한 약속이 있기에, 우선 나가볼 참이었다. 그런데 주인장 표정이 마음에 걸렸던 탓인지, 눈을 떴더니 이미 4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일찍 일어난 김에 일출을 볼 요량으로 언덕에 올랐다. 곧이어 풍선 같은 열기구들이 동시에 떠오르는 풍경이 장관을 이뤘다.

 





스페인 커플을 기다리게 했을까봐 마음이 불편했는데, 마을이 좁다보니 반나절 만에 우연히 마주쳤다. 그들은 정말로 공짜 열기구를 탔다고 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엑스트라로 따라 다녀야 한다기에 열기구만 타고 빠져 나왔고, 사내는 화를 냈단다. 그날 저녁도 선셋을 보러 언덕에 올랐는데, 그 사내를 또 만났다. 엑스트라로 출연한 또 다른 뉴질랜드 커플과 함께 있었다. 그는 나를 가리키며 얘가 나를 못 믿고 오늘 안 나왔어. 그리고 얘 친구들은 열기구만 타고 내 뺐어라며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그러더니 서양 관광객은 많은데 동양인 엑스트라가 부족하다며 내일 촬영장에 나와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더 이상 놀림 대상이 되거나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아 단호하게 거절했다.

 

카파도키아의 유명세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페이스를 지키기로 했다. 괴레메 야외박물관에서 만난 기독교 유적은 정말 대단했다. 동굴 교회 벽면과 천장에는 마구간에서 태어난 예수, 병든 자를 고치는 예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 등 그의 일대기가 그려진 프레스코화로 가득했다. 낮은 곳으로 오셨던 예수, 기독교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하루는 숙소에서 만난 스무 살 한국인 대학생 친구들과 함께 제미밸리 트레킹을 다녀왔다. 다음날은 혼자 저녁을 먹는데, 옆 자리에 앉은 핀란드 부부가 말을 걸어왔다. 이튿날 주변 투어를 함께 하자는 제안에 그들이 빌린 차를 얻어 타고 젤베와 차우신 일대를 돌았다


그 다음날은 지하도시를 보기 위해 혼자 네브쉐히르를 거쳐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데린구유에 갔는데, 지하도시에서 이태리 커플을 만났다. 둘 다 배구선수로 체구가 좋았다. 일본 문화를 좋아한다는 남자는, 팔뚝에 붓다와 벚꽃 등 일본 문양 타투를 가득 새기고 있었다. 그들도 렌트카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함께 주변을 좀 더 돌아본 뒤 괴레메로 돌아가자고 제안했다. 버스 두 번을 갈아타고 숙소로 돌아갈 일정밖에 없던 나는 흔쾌히 응했다. 혼자 하는 여행은 언제나 친구들이 다가오기 때문에 사실상 외로울 틈이 없다. 


함께 돌아 본 카파도키아의 풍광은 정말 아름다웠다. 귀젤유르트(Guzelyurt)와 셀리메(Seleme) 등지에 매료되었다. 모래바람이 부는 언덕에 서니 괴레메가 관광객들에 의해 침략받기 전의 모습도 이렇게 경이로웠겠구나 싶었다. 돌아와서 지도를 펼쳐보니, 이미 레드투어, 그린투어를 다 한 셈이었다.

 




마지막 밤, 게스트하우스를 봐주던 여행자 스탭 한명이 다시 여행길을 떠난다며, 그녀를 위한 작은 파티가 열렸다. 숙소 사람들과 둘러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가운데 낮에 본 으흐랄라 계곡과 귀젤유르트 일대가 너무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그러자 주인장이 그런데 거기는 어떻게 갔어?” “차도 없이 뭐 타고 갔어?” “누구랑 갔어?” “그 사람들은 어떻게 만났어?”와 같은 질문을 쏟아냈다. 다소 공격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게스트하우스 숙박요금을 낮게 책정한 대신 투어 프로그램 연계로 수익을 내는 구조라는 것을 뒤늦게야 눈치 챈 것이다. '미안해요. 그렇지만 자연과 시간이 만들어낸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을 사람들 사이에서 쫓기듯 구경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터키 최대 관광지, 시골인심까지 삼킨 건 아니었다. 


앙카라에서 귤센에게 치마를 벗어주고 왔기 때문에 옷 한 벌을 살 기회가 생겼다짐을 늘리지 않기 위해 하나를 사려면 하나를 버린다는 나만의 원칙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침 너무 예쁜 옷 가게를 발견했다. 


제가 이런 스타일을 좋아해서 정말 많은 옷가게들을 봐 왔어요. 그런데 그중에서 이 가게가 최고인거 같아요. 하나하나 어쩜 이렇게 예쁠 수 있어요?” 진심이었다. 가게 주인 여자는 친어머니로 보이는 할머니와 매일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주인 여자는 할머니에게 내가 한 말을 설명해줬고, 할머니는 몹시 기뻐하셨다. 그러더니 옷 하나를 들고 오셔서 입어보라고 하셨다. 사라는 얘기인가 싶어 괜찮다고 했더니, 올이 하나 나가서 어차피 팔기도 어렵고, 안에 받쳐 입는 옷이 면 소재이니 마음에 안 들면 잘 때 입으라며 손에 쥐어 주셨다


말 한마디로 옷 한 벌을 얻은 것이다. 물론 나도 오고가는 길에 몇 차례 들러 작은 선물로 보답했지만.  

위에 입고 있는 저 하얀 옷이 바로 할머니가 주신 선물이다

 

 




Posted by 샨티퀸 트랙백 0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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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snowg 2015.02.21 15:28 신고

    멋진 여행이네요~^^

  2. addr | edit/del | reply 김포처자 2015.02.22 12:49 신고

    인생을 즐길줄 아는 멋쟁이,,, 게다가 저리 이쁘기까지야... 내가 제안한거 진짜 그냥 넘어가지 말라구!!! 아흑

    • addr | edit/del 샨티퀸 2015.02.22 13:33 신고

      이쁘다는 말한마디에 꺄르륵 웃느라 숨이 넘어갑니다. 향신료, 패브릭, 향초, 빈티지. 아자!!!

  3. addr | edit/del | reply 파라다이스블로그 2015.02.23 17:20 신고

    열기구가 떠있는 사진이 여행욕구를 강력하게 자극하네요 :) 멋진사진 감사합니다!
    저 풍경을 실제로 본다면 얼마나 가슴이 벅찰까요^^?
    저희 블로그에도 다양한 문화이야기가 있으니 놀러오세요~좋은하루되세요!

    • addr | edit/del 샨티퀸 2015.02.23 18:29 신고

      방문 감사합니다. 블로그 운영을 너무 잘 하시는 것 같아요. 덕분에 문화 트렌드 잘 구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