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본 터키 수피 댄스 영상, 하얀 가운을 입은 수피들이 단체로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하얀 접시꽃이 만개한 것처럼 신비로워 보였다. 그 여운이 몇 해 째 가시지 않은 탓인지, 나는 어느새 콘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카파도키아에서 콘야로 가는 사람은 나와 미국 청년 크리스 두 명 뿐이다. 크리스는 공항 유리 건설 현장 매니저, 세계 공항이 그의 작업 현장이다. 지금은 아부다비에서 2년째 근무 중이란다. 아부다비 여름은 너무 덥고 라마단에는 아무도 일을 하지 않는다며, 자체 휴가를 내고 두 달째 유럽과 터키 여행 중이었다. 우리 사회도 두 달 휴가가 가능하다면 나도 사표를 내지는 않았을 거야.


아나톨리아 고원 중앙에 위치한 콘야는 메블라나 교단의 발상지로, 매주 토요일 메블라나 문화센터에서 세마공연이 진행된다. 우리는 해가 중천에 있을 때 콘야에 도착해 터미널에 가방을 맡겨 놓고 세마 공연이 시작되는 밤 시간까지 느긋하게 시내를 배회했다. 숙박은 하지 않았다. 세마 공연을 보는 것이 콘야를 찾은 유일한 이유였으니까.


뇌리에 각인된 또 하나의 이슬람 수피 댄스 영상이 있다. 토니갓리프의 영화 추방된 사람들(Exils)’의 한 장면이다. 영화는 알제리계 프랑스 이민 2세대 남녀가 정체성을 찾아 프랑스, 스페인, 모로코를 거쳐 알제리로 향하는 길을 담았다. 아프리카 땅을 벗어나려는 이주민과 난민 무리에 역행하며 다다른 알제리에서 이들은 한 수피의식에 초대된다. 카메라는 일정한 리듬 속에서 몸을 흔들다 그 움직임이 격렬해지면서 자신의 과거, 상처, 뿌리와 마주하고 무아지경에 이르는 주인공의 모습을 롱 테이크로 잡아낸다. 낯선 땅, 낯선 종교이지만 그것은 우리나라 씻김굿과 닮아 있었다



해가 지고 청중이 모여들자, 원형체육관 같이 생긴 실내 무대에 조명이 깔리고 피리불고 북치는 소리가 관내에 울려 퍼졌다. 춤추는 수피 세마젠들이 검은 망토에 긴 갈색 모자를 쓰고 한명씩 등장하면서 무대 위 지도자인 세이히 손에 입을 맞췄다. 잠시 후 망토를 벗은 후 고개를 오른쪽으로 까딱 누인 채 천천히 돌기 시작한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단아하고 우아한 움직임이다. 움직임의 모양과 속도는 조금씩 달랐지만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세마젠의 움직임은 하나의 물결을 이뤘다


의식은 한 시간 반이 넘게 이어졌다. 자기에서 벗어나 신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수련이자 명상법이다. 의식은 상징으로 가득하다. 흰 수의는 자아의 죽음을 상징하고 긴 갈색 모자는 자신의 묘비를 상징한다. 지축에 가깝게 살짝 기운 각도로 회전하는 것은 신 앞에 자신을 내려놓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한 손은 하늘을 향하고 다른 한 손은 땅을 향한다.신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전한다는 뜻이다


마치 꽃이 피어나는 과정을 저속 촬영한 것처럼 우주와 생명의 비밀을 품고 있는 듯 신비로웠다. 물론 체육관이 아닌 내밀하게 초대된 실내 집회였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았다



이슬람 수피즘은 엄격한 율법주의에 대항해 나온 영적 운동이다이슬람 수피즘의 한 교파인 메블라나 교단의 창시자무하마드 젤랄루딘 루미(1207~1271)는 믿음에 있어 중요한 것은 쿠란의 내용이 아니라 사랑과 체험을 통해 신을 만나는 것에 있다고 강조했다


루미는 위대한 신비주의자이자 시인으로 그가 남긴 저서는 이슬람 문학의 정수로 꼽힌다

루미의 시 두 편을 소개한다여행에 관한 노래는 나를 위한 것이요. 봄의 정원은 긴 겨울을 보내고 있는 당신을 위한 노래다.


여행을 떠날 때는 여행자에게 조언을 구하십시오.

다만 한곳에 집착하는 절름발이에게는 묻지 마시고.


마호메트는 말합니다.

나라에 대한 사랑은 신의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진정한 나라란 당신이 지금 있는 곳이 아니라 당신이 향하고 있는 곳을 말합니다.


전통에 따라 세례를 받는 중에도 사람마다 기도하는 것이 다릅니다.

참 기도자는 조심스레 물을 부어 코를 씻어 내며, 영혼의 향내를 구합니다.

신이여! 저를 씻어주세요. 저의 손이 이 손을 씻지만, 이 손은 영혼을 씻을 수 없습니다. 저는 그저 껍질만을 씻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만이 저를 씻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엉뚱한 구멍에다 대고 그릇된 기도를 합니다.

그는 흙탕물을 일으키며 콧구멍 기도를 합니다.

엉덩이에서 천상의 향기가 피어날 수 있겠습니까?


바보들과 어울려 초라해지지 마십시오.

스승 앞에서 자존심을 세우지도 마시고.


당신의 집을 사랑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가 없군요.

어디가 진짜 당신 집입니까?”


사막을 여행하는 물고기,74p 나를 찾아가는 물고기 




봄의 정원으로 오라.

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봄의 정원으로 오라>, 젤랄루딘 루미



Posted by 샨티퀸 트랙백 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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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이지은 2015.02.26 16:48 신고

    콘야도 좋았는데...터키 어딘들 안좋을까만은^^
    우리애들 현지인들과 사진 많이 찍었던곳이라요.

    • addr | edit/del 샨티퀸 2015.02.26 21:39 신고

      세마의식 뿐 아니라 메블라나 박물관 그리고 모스크 앞 광장의 해가 진 라마단 풍경까지 인상적인 경유지였어요.

  2. addr | edit/del | reply 2015.05.01 03:47 신고

    몰래 눈팅만하던 샨티퀸님의 블로그. 오랜만에 찾아오니 이게 웬일 콘야에 오셨었군요. 하아.. 터키에 오신줄도 몰랐으니.. 콘야에서 공부하고있습니다. 블로그 가끔이지만 기쁘게 보고, 읽고 있어요 :) 또 오신다면! 꼭!!!

  3. addr | edit/del | reply 샨티퀸 2015.05.01 11:24 신고

    밍님! 반갑습니다. 이런 댓글을 미리 주셨다면, 콘야에서 즐거운 만남을 가질 수 있었으려나요? 저도 괜한 즐거운 상상을 합니다. 얼마전에 터키 친구가 아몬드 꽃이 핀 터키 사진을 보내줬었는데, 터키의 봄도 아름답겠죠? 이제 여름을 향해 가니, 저도 터키가 더 그리워집니다. 터키에서 공부하고 계시다니 부럽습니다. 제게도 종종 터키 소식 전해 주시길 바래요. 맛난 터키 음식 많이 드시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