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설산에서 반바지를 입고 맨발로 물장난 치는 듯한 친구의 사진 한 장. 이 어리둥절한 상황 속 설산이 온천수의 칼슘 퇴적물이 14천년 동안 바위 위를 타고 흐르면서 만들어낸 하얀 목화의 성, 파묵칼레 온천 석회층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다소 검색 시간이 필요했다. 2005년, 벌써 십년 전의 일이다.   

 

사진 이미지는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쉽게 떠올려 볼 수 있었지만, 왠지 그 사진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비번도 가물거리는 싸이월드에 접속해 친구 미니홈피의 사진첩을 한참이나 살폈다. 친구의 사진첩을 다 뒤집고도 못 찾았는데, 내 미니홈 사진첩에서 당시 스크랩했던 친구의 사진을 발견했다. 한참 싸이질을 하고 있다 보니 시간여행을 떠나 온 기분이었다. 

 

역시 기록은 기억보다 정확하다. 친구가 그 사진을 올린 것은 20054, 사진을 찍은 연도는 2002년 친구가 졸업 후 원하던 회사에 합격해 40일간의 여유가 생겨 떠난 터키여행 사진이었다. 당시 사진 몇 장을 스크랩하면서 몇 글자를 끄적여 속내를 드러냈다.




"나 오늘 갑자기 외로워서 친구, 너의 홈에 다녀왔어우린 정말 이란성쌍둥이처럼 서로에게 자석처럼 끌렸었지그런데. 그 무엇인가가 우리의 벽으로 항상 작용하기도 했었어우리가 꾸는 꿈은 같았는데넌 그것을 바로 그걸 할 수 있었고난 계속 버겁게 꿈만 꾸어댔지맞지? 너도 그걸 알고 있었니보고파벚꽃아래서 보고 싶다더니 오늘 비오고 나면 벚꽃 다 지겠다빨랑 와!"

 

손발이 오그라드는 고백. 이것이 바로 2000년 중반 당대를 풍미했던 싸이월드의 관계와 감성이라는 것이다. 하하

 

그러니까 친구는 대학 졸업하자마자 발을 담갔던 파묵칼레에 나는 10년도 더 지나 찾게 된 것이다. 이상하게도 새로운 여행지에 갈 때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언젠가 보았던 블로그 사진이나 친구들의 인상평, 그리고 그걸 부러워하던 당시의 내 마음이다.

 

심야버스를 타고 이른 아침에 도착한 파묵칼레. 콘야로 가는 버스에서 만났던 크리스와 여전히 함께였다. 숙소를 먼저 구하고 아침을 먹은 뒤 눈을 좀 붙였다, 오후에 느긋하게 일어나 원피스 안에 비키니를 챙겨 입고 파묵칼레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파묵칼레 온천 석회층은 세계자연유산으로고대 유적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전세계 보기 드문 복합세계유산이다한번 입장하면 석회층으로 만들어진 계단식 못과 수영장, 히에라폴리스 고대 도시 유적지까지 한번에 즐길 수 있다. 우리는 자유이용권이라도 끊은 것처럼 들뜬 채, 폐장 시간까지 세계유산 단지 안에서 유유자적했다.

 


히에라폴리스는 파묵칼레 언덕 위에 세워진 고대도시로 기원전 2세기경 페르가몬 왕국에 의해 처음 세워졌다. 기원전 130년 로마에 정복되면서 성스러운 도시(히에라폴리스)’라고 불렸다. 로마황제들은 요양과 휴양을 목적으로 파묵칼레를 즐겨 찾았다고 한다


원피스를 벗고 수영복만 입은 채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담갔다. 햇볕을 받은 온천수는 푸른 빛깔을 띠고 하얀 석회층은 눈처럼 빛났다. 세계에서 몰려든 여행객들과 함께 세계자연유산에 몸을 담그는 호사를 누리며 비탈 아래 호수와 마을, 그 너머 맞은편 산자락을 바라보고 있자니 황제도 부럽지 않다.

 

이어서 온천지대 위 매점에서 맥주를 한 병씩 사들고 언덕 위 로마 시대 원형극장에 올랐다. 최대 15천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하니, 당시 이 도시가 얼마나 번영했었을지 짐작이 간다. 크리스가 묻는다. "상상이 돼? 고대인들은 여기에 모여 무엇을 했을까?"



고대 극장은 당대 가장 효과적인 선진기관이었다지 않나. 나는 전날 콘야에서 본 모스크 앞 광장을 떠올렸다. 라마단에는 낮동안 금식하며 신과 가까이 하고, 해가 지면 이웃에게 음식을 베풀라는 종교적 가르침에 따라 누군가 비용을 지불한 성대한 만찬이 준비되어 있었다. 라마단 만찬장이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정치인들의 예비 선거운동장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고 한다. 식사 테이블 앞에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음악이 흐르고 정치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연설을 하고 사람들은 기도를 한 뒤 식사를 했다


"이천년 전 이곳에서도 연극과 축제의 종교 행사가 열리고, 정치인들은 민심을 얻기 위해 연설을 하고, 사람들은 모여 노래하고 춤추고 마시고 놀았겠지?"  


고대 유적지에 잠잠히 앉아 있다보면 일본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의 말처럼 천년 전, 이천년 전이라는 까마득한 시간이 눈앞에 굴러다니는 것 같다. 다카시는 말했다. 유적을 만나는 것, 그것은 천년 단위로 시간을 보게 하는 것이라고십년쯤 뒤쳐지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Posted by 샨티퀸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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