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흔넷, 고령인 할머니를 모시고 덕산온천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가족들은 온천 테마파크 이용권을 끊고, 나는 할머니를 모시고 탕에만 들어갔다. 할머니의 몸을 때수건으로 깨끗이 밀어드리고, 탕으로 모셨다. 조심스러운 마음에 할머니를 아이 다루듯 했다. 밖은 추운데 탕의 온도가 높아 혹시라도 무리가 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잠시 후 물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말씀으로는 알았다고 하시더니, 내 손을 온몸으로 저항하듯 물속으로 더 깊숙이 파고드시는 것 아닌가. 순간을 벌어보고자 하는 그 몸짓이 필사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짠했다.  

 

며칠 전 터키 파묵칼레 글을 올린 김에, 이번 여행 중 찾은 온천을 전부 떠올려봤다. 터키 파묵칼레, 그리스 코스와 산토리니 그리고 헝가리 부다페스트 세체니와 키랄리까지 모두 다섯 군데다. 


습하고 더운 실내탕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노천탕일 때는 얘기가 완전 달라진다. 노천탕을 처음 경험한 것은 특이하게도 북한에서였다. 워크숍으로 사무실 사람들과 함께 갔던 금강산관광, 산행을 마친 다음날 온천을 찾았다. 전용 노천탕 옆으로는 벽이 높이 쌓여 있어 바깥세상과 단절되어 있었다. 북한에서 노천탕을 즐기고 있는 상황이 뭔가 부조화로운 것 같으면서도 그 짜릿했던 순간을 오랫동안 잊을 수 없었다. 

 



터키 파묵칼레에서도 비슷한 쾌감이었던 것 같다. 이 작은 시골마을에 닿기 전까지 터키 내륙을 다닌 터라, 여름인데도 긴 치마를 입고 종종 스카프까지 두르고 다녔었다. 세계자연유산 천연 온천에 비키니를 입고 앉아 시골마을을 내려다보니 일탈에서 맛보는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내가 경험한 온천 중 으뜸을 꼽자면, 그리스 코스 섬에 있는 터마 비치(Therma Beach) 온천이다. 그리스 여행기는 나중에 본격적으로 풀겠지만, 나는 많은 한국 여행객들이 산토리니를 가기 위해 당일 또는 일박으로 거쳐 가는 이 코스 섬에 머문 적이 있다. 독일 엄마와 함께 살고 방학마다 그리스 아빠와 함께 지내는 스무 살 마리와 함께였다.

 




마리는 지나는 길에 잠시 들른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나를 터마 비치로 데려갔다. 해안도로를 달리던 차를 세우고 산비탈을 걸어 내려갔다. 해변을 따라 한참 걷자 바위 절벽 아래 해수온천탕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닷물 얕은 지점에 큰 돌로 울타리를 치고 만든 해수풀장으로, 입장료도 필요 없었다. 바위산 아래로 온천이 흐르는 물길이 그대로 보였다. 나는 터마 비치에 완전 반했다. 탁 트인 경관 속에 자연의 일부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스에서 만난 두 번째 온천은 산토리니에서였다. 배를 타고 화산섬 트레킹을 마친 후 팔레아 카메니(Palea Kameni) 온천에 닿았다. 뙈약볕에 바람을 맞으며 화산섬을 한 시간 가량 걸은 뒤라 빨리 물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온천 섬 가까이 이르자 배는 바다 위에 정박했고, 온천까지 30미터 가량 수영으로 이동해야 했다. 이곳의 재미는 배에서 온천까지 헤엄쳐 가며 수온의 변화를 느낄 수 있고, 돌아오는 길에는 몸에 묻은 진흙을 차가운 해수에 씻어 낼 수 있다는데 있다. 

 

우리 배가 도착하기 직전에 단체 일본 여행객이 온천에서 배로 복귀하고 있었다. 전체가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고, 우리 배에 탄 사람들은 그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다음은 헝가리 부다페스트 온천이야기다. 동유럽 국가를 한 달 여행하다, 폴란드 크라코프에서 빈대에 물렸다. 목, 팔, 다리에 줄 지어 모기에 물린 것 같은 자국이 남았고, 말도 못하게 가려웠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할 때까지 가려움과 붓기는 극성을 부렸다.

 

부다페스트의 첫 인상은 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하루는 그 유명한 세체니(Szeczenyi온천에 갔다. 소문대로 궁전처럼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이곳은 국내 온천의 테마파크나 의료관광 개발을 위한 대표적인 벤치마킹 사례이기도 하다. 실내에는 전문가를 따라하는 수중 물리치료 프로그램을 비롯한 다양한 이벤트 탕과 사우나가 운영되고 있었다. 야외에는 커다란 수영장과 노천탕이 있다. 사람들은 햇살 아래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달팽이관 모양을 따라 돌기도 하고, 분수대 아래 버블 마시지를 즐기기도 했다. 다른 풀장에서는 체스를 두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 한나절 소풍나온 것 같은 풍경이었다.    




 

부다페스트를 떠나기 전날, '왕의 온천'이라는 뜻의 키랄리(Kiraly) 온천을 찾았다. 오스만투크르 시대에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터키식 건물로 19세기 초까지 왕족의 소유였다고 한다. 볼 것 많고 즐길 것 많은 부다페스트에서 한 박자 쉬어가기에 딱 좋은 숨어있는 보물 같은 장소다. 내부에는 팔각형 모양의 탕이 중앙에 놓여 있고, 건물 안쪽으로 정원도 갖추고 있다. 천장은 하맘의 전형적인 형태로, 둥근 돔 위에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다. 그 사이로 쏟아지는 푸른 빛은 신비로운 동시에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두 시간쯤 몸을 담근 후 바라보는 부다페스트 야경은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다. 

 

키랄리 온천을 다녀오고 나서 거짓말처럼 빈대 물린 자국이 아물었다. 온천의 효능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체험해 보긴 생애 처음이다. 그렇게 나는 온천 예찬론자가 되었다.





Posted by 샨티퀸 트랙백 0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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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달빛천사7 2015.03.08 23:25 신고

    이런곳에서 시간 보내고 싶어요

  2. addr | edit/del | reply 랑월 2015.03.09 02:28 신고

    여행중.. 중간에 온천이 껴있으면 ..정말 좋은거 같아요 ㅎㅎ 여행중 피로를 풀어줄 타이밍~~
    저도 온천을 참 좋아해서 ㅎ 온천이 있다면 사양하지 않고 다니지만...샨티퀸님은 더 대단하시내요^0^

    • addr | edit/del 샨티퀸 2015.03.09 08:25 신고

      네,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온천 테마로 여행을 다녀도 좋을 것 같아요 ^^ 랑월님 블로그도 잘 봤습니다!

  3. addr | edit/del | reply 파라다이스블로그 2015.03.09 11:30 신고

    안녕하세요 파라다이스 블로그 입니다^^ 온천 여행 하면 가까운 일본을 떠올렸었는데, 유럽에도 온천이 많이 발달되어있군요. 자연 경관과 어우러져 여행 중 휴식의 묘미가 제대로 느껴질 것 같아요~ 저희 블로그에도 다양한 문화 이야기가 있으니 한 번 놀러오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