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고온 건조하고, 겨울엔 온난 다습한 기후로 올리브, 오렌지, 포도 재배가 용이하다고 배운 지중해 연안. 지중해 하면 유럽을 먼저 떠올리지만, 바다는 유럽만 편애하지 않고, 터키를 비롯한 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 고루 면하고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3년 동안 세계여행을 하고 돌아온 K와 이리카페에 마주 앉았다. 그녀는 동그랗게 터키 지도를 그린 뒤, 페티예에서 안탈야로 이어지는 터키 지중해가 정말 예쁘다고 말하며 지도 위에 별표를 해 주었다. 물에 있어서만큼은 그녀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태국 꼬따오였다. 낭유안 섬을 포함한 6개 지점으로 스노클링을 떠나는 배 위에서였다. 당시 나는 남자친구와 세세한 계획도 없이 느긋하게 장기여행을 할 때라, 배가 섬에 데려다 주면 여유 있게 해변에서 물장난 치며 물고기 구경이나 하고 와야지 하는 생각으로 투어에 참여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배는 해변이 아니라 망망대해 바다 한 가운데 멈춰 섰다. 더 당황스러웠던 것은 배 엔진이 꺼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서양 여행객들이 환호하며 바다 속으로 뛰어 내리는 것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자 친구 두 명이 있었다. 그 중 한명도 거침없이 바다 속으로 뛰어 내리더니, 물 위로 몸을 가볍게 띄우며 물 진짜 맑아!”를 외치고는 날렵한 몸놀림으로 바다 저 멀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녀가 바로 K다. 

 

난감해 하는 우리에게 다가온 건 그녀의 친구 J였다. “처음이세요? 제 친구는 물이라면 환장하는 아이라서요. 구명조끼 입으면 괜찮아요. 코로 말고 입으로 숨 쉬셔야 해요. 물이 넘어 왔을 때는 퉤하고 뱉어내시면 되고요.” 그녀는 스노클(숨대롱) 이용법을 알려주며 배 위에 덩그러니 남은 우리를 살뜰히 챙겨줬다.

 


아무튼 굴욕스러운 모습으로 처음 대면했던 KJ. 그들은 아직도 우리를 꼬따오 커플이라 부른다. 우리는 K의 바다 속 우아한 몸놀림을, J가 배 위에서 베푼 친절을 잊을 수가 없다.


배 위에서 유일하게 구명조끼를 입고 스노클링을 했던 이날의 설욕을 위해, 나는 지난 5년간 꼬박 수영을 등록했다. 물론 한 달에 몇 번 못갈 때도 있었지만, 만원 탈의실과 샤워실의 부대낌을 견뎌가며 금욕적으로 수영을 배웠다. 구명조끼 도움 없이 자유롭게 바다 속으로 뛰어들 그 날을 위해.

 

결전의 그날이 온 것이다. 터키 지중해 페티예에 도착해 욀루데니즈(Ölüdeniz) 해변으로 향했다. 그 투명한 쪽빛 바다에서 나는 다음날 떠날 보트투어를 위해 혼자 입영 연습을 했다. 발이 닿지 않는 바다 위에 몸을 띄우던 그 순간, 내가 느낀 성취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근래 5년 동안 가장 잘 한 일이 바로 수영을 배운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바다수영 초보자에게 다행스러운 것은 터키 바닷가는 대부분 해변으로부터 60-70미터 내외에 튜브 같은 것을 연결한 안전띠가 쳐져 있다는 것이다. 일단 그 지점까지 수영으로 가면 안전띠의 부력을 이용해 물 위로 가볍게 유영할 수 있다. 

 

터키 종착지는 보드룸이어야 했다.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정해진 일정, 그리스 코스에 있는 친구네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보드룸에서 배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페티에에서 보드룸 반대 방향인 카쉬, 올림포스, 안탈야까지 지중해를 따라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결국 안탈야에서 왔던 길을 가로질러 보드룸으로 돌아와야 했다. 여행 중에도 나의 방랑벽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바다 그 자체가 당신의 혈관 속에 흐르기 전까지 당신은 이 세상을 제대로 산 것이 아니다.”라고 17세기 시인 토머스 트리헌(Thomas Traherne)은 말했다. 그리스 섬 코스, 산토리니, 크레타를 포함해 터키, 그리스 바닷가에서 보낸 약 한달 남짓한 시간동안 단 하루도 바닷물에 몸을 담그지 않은 날이 없었다. 비키니 위에 원피스와 선글라스 하나 걸치고, 비치 타올과 읽을거리 하나 챙겨 들고 매일 해변에 나가 수영하고, 해변 위에 누워있던 나날들. 내 인생에 이렇게 강렬하고도 단조로운 여름은 두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지 모른다.    

 



페티예: 요트가 세워진 항구 옆에 로마식 원형극장이 있고, 투명한 바다로 유명한 욀루데니즈 해변이 근처에 있다패러글라이딩과 저렴한 보트투어 프로그램 인기가 좋다근교에 사클르켄트 계곡과 지금은 텅 빈 그리스 마을 카야쿄이 등을 방문할 수 있다.





카쉬: 동네 전체에서 꽃향기가 나는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지중해 소도시다. 카쉬 내에 있는 비치는 대부분 리조트와 연계되어 있지만, 약간의 입장료를 내거나 식음료를 주문하면 선 베드를 이용할 수 있다. 지진으로 가라앉은 수중도시 케코바 섬 투어를 비롯한 다양한 보트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올림포스: 이스탄불을 제외하고, 터키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이름에서 풍기는 포스처럼 그리스 신화가 얽힌 고대 도시이자, 지중해 해적들의 근거지였던 곳이다. 입장권을 끊고 들어가면 유적지를 따라 흐르는 계곡물이 해변과 만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산비탈 아래 마을로 들어서면 트리하우스나 방갈로로 꾸며진 저렴한 게스트하우스가 줄지어 있다. 숙소는 대부분 아침과 저녁이 포함되어 있다. 일 년 내내 꺼지지 않는 불, 키메라 야간투어를 떠날 수 있다.


 



안탈야: 여행 중 만난 가난한 의대생 친구들이 말하길, 사랑하는 사람과 딱 한 장소를 여행하라고 한다면 안탈야를 가겠단다. 유적지와 해변, 현대 문화를 고루 갖춘 터키 지중해 최대 휴양도시다. 구시가지 안에는 고대 성곽 유적지 사이로 예쁜 건물과 골목이 있고, 담장 넘어 수준 높은 라이브 공연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보드룸햐얀 집들과 푸른 바다항구에 정박한 요트가 한 눈에 들어오는 깨끗하고 세련된 에게해 휴양도시이다라마단이 끝나고 바이람 기간에 도착한 보드룸 길거리는 현지여행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해수욕이 불가능한 비수기에 이곳을 찾았다면, 페티예서부터 안탈야에 이르는 리키아 가도를 걷는 것도 좋은 여정이 될 것 같다. 리키아는 터키의 테케 반도의 옛 이름으로, 페티예에서 안탈야까지 509km에 이르는 길을 제주 올레길처럼 해안선을 따라 산비탈을 걸을 수 있게 만든 코스이다. 1999년 영국 작가 케이트 클로우(Kate Clow)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고대 그리스 도시 리키아의 숨겨진 유적과 산 너머 지중해 절경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봄과 가을이 가장 좋고, 저녁에는 마을로 내려와 펜션 등에서 묵을 수 있어 일부 구간만 걸어도 좋다고 한다.


특별했던 올림포스와 카야쿄이에 대한 기억은 잠시 묻어두고, 이것으로 터키 여행기를 마무리합니다.

곧 이어질 그리스 여행기 기대해주세요.




 

Posted by 샨티퀸 트랙백 0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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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이지은 2015.03.14 16:29 신고

    사진으로 보니 더 아쉽다는...우리의 얀탈야는 비오는 날씨였다는~~~
    비맞으며 거리구경한게 더 기억에 남긴하지만.
    그리스 기대하오~~

  2. addr | edit/del | reply 하우스 2015.03.15 10:41 신고

    메인 보고 왔습니당! 섬세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포스팅이네요. 잘 봤습니다~

    • addr | edit/del 샨티퀸 2015.03.15 13:22 신고

      감사합니다. 긴 여행 중 이제 겨우 첫번째 나라 여행기를 마쳤네요. 종종 찾아주세요 :)

  3. addr | edit/del | reply 티스토리 운영자 2015.03.16 13:02 신고

    안녕하세요, TISTORY입니다. 이 게시글의 이미지가 3월 16일자 티스토리 앱 카테고리 배경이미지로 소개되었습니다. 항상 좋은 글과 사진으로 활동해주셔서 감사합니다.

  4. addr | edit/del | reply snowg1004 2015.03.25 23:21 신고

    시진과 글 보니 여행 가고 싶네요~
    다음에 기회되면 안내해 주세요~^^

    • addr | edit/del 샨티퀸 2015.03.25 23:27 신고

      그런 기회가 꼭 왔으면 좋겠네요! 가이드 팁 두둑히 챙겨주실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