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스와 딸 리아는 보자마자 달려들어 껴안고, 깨물고, 뽀뽀하며 격하게 서로를 반겼다. 이렇게 친밀한 부녀지간을 보는 건 처음이어서, 나는 속으로 적잖이 놀란 채 그들만의 환영식을 지켜보았다.

 

독일에서 자란 리아는 대학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문화를 공부한다. 그리스 현지인들에게는 그리스어로 대화하고, 니코스와 둘이 대화할 때는 주로 독일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친한 그리스 친구들과는 어려서부터 영어로 대화해 왔다고 한다. 이제 아랍어와 스와힐리어도 배우기 시작했단다. 오랜 시간 씨름한 영어 하나 구사하는 것도 버거운 내게 유럽인들의 언어 세계는 참 낯설다. 리아는 정말 구김 없이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다양한 문화에 관심이 많은 그녀는 멀리 동양에서 온 나에게도 마음을 열고 스스럼없이 대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 리아가 말했다.

, 일 년 만이다. 그런데 참 이상해. 막상 코스에 오고 나면 마치 한 번도 이 섬을 떠나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느껴져.”

 

니코스의 집에서는 바다 건너 터키 보드룸 불빛이 보이고, 주위는 아프리카 대지처럼 보이는 마른 언덕이 둘러져 있다. 집 구석구석 여행 중 수집한 수공예품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커다란 거실이 있고, 통로를 지나 니코스 방과 리아 방이 나란히 붙어 있다. 나는 거실 소파를 차지했다. 쿠션을 빼고 그 위에 이불을 깔아 제법 넓고 근사한 침대를 만들었다. 이 집은 여름이면 언제나 손님들로 북적이는데 12명이 함께 생활한 적도 있단다.

 

나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마치 처음부터 리아의 친구였던 것처럼 대부분의 시간을 그녀와 함께 했다. 매일 느지막이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해변에 나가 반나절 누워 있다 돌아와 요리를 해먹고 낮잠 자다, 해가 떨어지면 맥주 한잔 마시러 나기기를 반복했다. 리아가 능숙하게 운전하는 차를 타고 매번 새로운 해변을 찾아 섬을 한 바퀴 돌았더니, 어느새 섬 구석구석 해변의 특징까지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은 물이 차가운지 따뜻한지, 수심이 깊은지 얕은지, 파도가 센지 잔잔한지, 모래인지 자갈인지에 따라 자신의 취향별로 비치를 선택한다. 나는 앞서 말한 해수온천을 품고 있는 터마 비치를 가장 좋아하고, 리아는 물이 차갑고 수심이 깊은 아기오 포카스 비치를 가장 좋아한다. 내가 이렇게 그리스 섬을 동네 삼아 어슬렁거리게 될 줄은 몰랐다.

<해수온천 터마비치가 궁금하다면 클릭!>


그러나 현지인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여름이 되면 그리스 섬 전체는 유럽 각지에서 몰려든 휴양객들로 몸살을 앓는다. 니코스는 하루 열 시간이 넘게 일을 한다. 겨우 아침에 얼굴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그는 불평하지 않는다. “괜찮아. 나는 여름의 이런 활기가 좋아. 여름엔 열심히 일하고 겨울에 긴 호흡으로 쉴 수 있으니까.” 


니코스 뿐 아니라 섬사람 대부분은 여행사, 호텔, 레스토랑, , 요트 등 관광서비스업에 종사한다. 대개 4월부터 10월까지 영업을 하고, 11월부터 3월까지는 문을 닫는다. 그중 7,8월은 극성수기에 해당한다. 휴일도 없이 정신없는 여름을 보내면서 섬사람들은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보통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북쪽인지 남쪽인지를 묻기 마련인데,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제일 먼저 한국의 겨울 날씨는 어때?”라고 물어 보곤 했다. 비수기 여행지로 고려해 보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겨울마다 여행을 다니는 그들이 마냥 부럽게만 생각됐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배도 끊기고 인적도 끊기는 겨울에 경제활동도 하지 못한 채, 섬을 지키고 있는 일이 그들에겐 고역이라고 말한다그리스 경제가 악화되면서 마냥 쉴 수만은 없는 이들은 겨울이 되면 섬을 벗어나 EU내 다른 나라에서 단기체류로 일을 하기도 한다. 이런 실상을 알고 나니, 겨울마다 짐을 꾸리는 그들을 마냥 부럽다고만 할 수도 없다.

 


하루는 니코스가 일하는 탐탐비치에서 라이브 재즈공연이 있었다. 나는 야자수가 그려진 홍대 팜(palm)이라는 재즈클럽에서 가끔 라이브 재즈를 듣곤 했는데, 이번에는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진짜 팜 트리 아래에서 연주가 시작됐다. 그 상황 자체가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휴양객들도 많았지만, 레스토랑 스탭 가족들과 지인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리아는 스탭 가족 모두와 정답게 인사를 나눴다. 몇 차례 얼굴을 봤다고 나도 반갑게 맞아줬다. 이곳에 있으면서 어느새 니코스와 리아의 친구들을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시내 옷가게 언니와도 친한 친구가 되었다. 코스 섬을 떠날 때, 니코스가 물었다. “그리스에서는 무엇을 봤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딸과 아빠, 그리고 그리스 사람들이 어떻게 이웃들과 관계를 맺고 지내는지를 보았지.” 라고 답했다.

 

실제로 그리스를 다시 찾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4년 전 짧은 출장에서 받은 그리스 첫 인상은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몸에 배어있는 공동체 중심 사회라는 것이었다. 기원전 9세기에 자유로운 시민공동체인 폴리스를 구성하고, 기원전 5세기 이미 민주주의를 꽃피웠던 저력의 근간을 확인한 것 같았다


박경철의 <문명의 배꼽, 그리스>에는 버스터미널 앞 식당마저 음식 맛이 좋은 이유를 마을공동체에서 찾는 대목이 나오는데, 나의 이런 생각 역시 소소한 데서 비롯됐다. 당시 우리를 안내했던 가이드 선생님의 모습에서였다. 그분은 통역, 기관 관계자, 현지 버스 기사와 식당 종업원에 이르기까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남달랐다. 물론 한국 교포였고, 그분 개인 성품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지만, 분명 그분이 속한 사회를 상당부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유럽 어느 나라에서도 보지 못한 강한 유대관계였다. 몇 차례 출장길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 중 진심을 담아 초대한 두 사람 모두 그리스에서 맺은 인연이었다.


 



터키를 여행하면서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파묵칼레, 에페스 등지에서 터키보다 그리스 민족이 만들어낸 역사와 종교의 흔적을 더 많이 보아왔던 터라, 터키를 여행하는 내내 나는 그리스를 더 가깝게 느끼곤 했다


특히나 페티예 근교에 있는 텅 빈 유령의 마을, 카야쿄이에 갔을 때에는 내가 늘 궁금해왔던 그리스 공동체 중심 사회의 한 단면을 발견한 것 같아 반갑고 설레기까지 했다. 이 그리스 마을은 그리스-터키 전쟁의 결과로 1923년 스위스 로잔에서 체결된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에 관한 협정'에 따라 그리스 정교도를 강제이주 시키면서 텅 빈 유령의 도시가 된 곳이다.

 

그리스 고대 극장처럼 산자락을 따라 형성된 이 마을을 걷는 동안, 어느 자리에서든 산비탈 위로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었고, 맞은편 탁 트인 공간 너머 산자락을 내다볼 수 있었다. 그제서야 그 어떤 건물도 조망권을 독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돋보이기 위해 이웃의 시야를 가릴 정도로 크거나 높게 지어진 건물은 그곳에 없었다.


나를 넘어 이웃을 배려하고 전체를 고려하는 '공동체 중심 사회'. 이것이 내가 그리스를 다시 찾은 이유이고, 또 그리워하는 이유이다.  







Posted by 샨티퀸 트랙백 0 : 댓글 4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addr | edit/del | reply 스윗홈 2015.03.28 19:13 신고

    다음 메인에 떴네요 :)

    꽃할배로 예능감 충만하게, 꽃파티님 블로그로 그리스에 대해 좀 더 심도있게 접근할 수 있으려나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 addr | edit/del 샨티퀸 2015.03.28 21:34 신고

      앗, 저도 꽃할배 너무 좋아해요. 제 블로그도 꽃시리즈 중 하나인가요?

  2. addr | edit/del | reply im a deer 2015.04.09 15:48 신고

    이런! 봐 버렸어요~ 남 언뉘의 뒤태를! 뿅뿅! 섹쉬ㅋ 그나저나 저 햇빛 비추는 테이블 멋지네요...저 사진 그대로 햇살도 우리 집에 놓고 싶다능ㅋㅋ

    • addr | edit/del 샨티퀸 2015.04.09 22:13 신고

      사슴님, 마음 같아선 산까지 옮겨다 드리고 싶네요. 글구 뒤태를 알아보다니@@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