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크레타에서 두 시간 가량 비행기를 타고 폴란드 크라쿠프Kraków에 도착했어. 현지인들은 크라코우라고 불러. 도착하자마자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꽃을 든 사람들이었어무슨 행사에서 꽃이라도 나눠준 건가 싶을 정도로 거리에는 꽃을 든 사람이 많았어남자노인 할 것 없이 말야. 여기저기 사람이 모인 곳엔 꽃을 팔고 있더라고




친구를 찾으러 나선 역사광장에는 결혼하는 커플하객들나들이 나온 시민들관광객들로 북적였어여기저기 장이 서고 공연을 하는 것을 보니 축제가 열렸나봐. 친구찾기를 포기하고 호스텔로 돌아와야만 했어. 그리스에서 마지막 며칠 무리한게 이제야 나타나는지 컨디션이 좋지 않았거든. 


정수리로 내리꽂는 빛을 피해 그늘을 찾던 발걸음이 이제 부지런히 해를 쫓아 움직이고 있어계절이 변하는 그 시차를 느낄 틈도 없이 한두시간 만에 한여름에서 바로 가을 속으로 뛰어넘어 온 것만 같아. 왠지 조금 쓸쓸해졌어. 그렇지만 괜찮아. 흥이 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는 지금 아픈거니까. 




이른 저녁부터 아침까지 내리 잠을 자고 난 뒤에야 정신이 좀 들었어. 전날 만나기로 했다 못 만난 친구는 오후에 다시 만나기로 했고. 나는 곧바로 주말에만 열린다는 벼룩시장으로 향했어긴 옷가지를 몇 개 장만해야만 했거든. 


굴다리 옆으로 커다란 장이 섰어. 그동안 유럽에서 봐 왔던 벼룩시장과는 조금 달랐어. 그곳에 관광객은 없었어. 무채색 옷차림에 무뚝뚝한 표정의 얼굴들. 그리고 그들이 꺼내놓은 물건들은 그야말로 잡동사니에 가까웠어.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금세 그들이, 그리고 그 물건들이 정겹게 느껴졌어.









그들은 구동구권에 대한 향수를 서로 진열해 놓은 것 같았어. 그들만의 은밀한 추억을 공유하듯 말이야. 시장 중앙에 헌책진열대가 자리잡고 있었고 그곳에 사람이 가장 많았어. 여기저기 옷가지, 운동화, 군화가 올려져 있었어. 마리아나 예수가 그려진 성화, 그릇, 라이터와 연장같은 것들도 나와 있었고, 생뚱맞게도 줄기째 묶어진 마늘이 마치 골동품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어. 

 

물건을 대하는 그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지만 이방인을 대하는 그들의 표정에서는 수줍음이 묻어났어. 나는 손가락으로 셈을 하며 만원 정도의 돈으로 긴 옷 세 개를 장만했어이제 이 정도 선선한 날씨는 거뜬하게 이겨낼 수 있겠어. 


그런데 내가 그만 실수를 한 것 같아. 옷을 세탁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다 껴 입었거든. 그리고 며칠뒤 뭔가에 물린 것처럼 온몸이 가렵기 시작했어. 아마 나는 벼룩시장에서 벼룩까지 사들인 모양이야. 






그래도 다행이야. 저렇게 웃고있으니! ;)


** 이곳 Hala Torgowa 벼룩시장은 현지인들이 주를 이루는 빈티지마켓이라면, Plac Nowy 벼룩시장에는 관광객이 많고 옷과 물건이 좀 더 실용적이다.  



Posted by 샨티퀸 트랙백 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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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히티틀러 2015.12.31 01:52 신고

    여행하면서 벼룩시장 같은 곳을 종종가는게 '정말 이런 거 누가 사나' 싶은 물건을 파는 경우도 많더라고요ㅎㅎㅎ
    그래도 옷은 한 번 빨아서 입으세요.

    • addr | edit/del 샨티퀸 2015.12.31 11:23 신고

      히티틀러님 오랫만입니다. 추워서 당장 껴입었던게 화근이었나 봐요. 해피뉴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