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1.13
데칸고원 3편-아잔타

여행자 싯다르타를 떠올려 본다.

고대 인도의 싯다르타 고타마는 궁전 “안”에서 살다 궁전 “밖”의 세상을 보고 싶어 여행길에 오른다. 신기한 만물 중에서 그의 눈에 띄는 것은 구부정하게 늙은 노인, 기침하며 떨고 있는 병자, 슬픈 얼굴을 한 사람들이 들고 나가는 관속의 죽은 사람이었다. 번뇌 속에 그는 안락함을 주던 “안”에서의 생활을 포기하고 “밖”으로 절대 자유를 찾아 떠난다. 그때 나이 나와 같은 29이다. (만으로 ^^)

사용자 삽입 이미지데칸고원이 낳은 종교예술 아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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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를 방문할 때 쯤 나의 인도 여행도 한 달 째로 접어들었다.
극성맞은 인도인들 사이에 지친 가운데 나는 불상 앞에서 진심으로 위안을 얻었다. 인도인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기독교인인데, 불교에 대한 이해는 교양 수준에도 못 미칠 만큼 무식하다.
몇 해 전 친구들과 떠난 여행에서 향일암에 오른 적이 있다. 높은 절벽 위에 세워진 향일암 아래로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또 다른 삶이 펼쳐 보이는 듯 했다. 일 년 중 겨우 얻은 일주일의 휴가길에서 고갈되어 있던 정신이 풍요로워지는 순간이었다. 그곳에서 조용히 공부하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간 사무실에서 우연히 향일암을 다녀왔다는 선배를 만났다.
불교도인 선배는 향일암에서 기도를 하면 효험이 좋다며, 자신과 남편의 출세가도와 자식들의 학업성취를 위해 빌고 왔으니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며 싱글벙글해 있었다. 향일암에서 하는 기도빨(?)이 정말 세다면, 그것은 향일함이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을 비워주고 동시에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때 선배의 일은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잔타 석굴 사원군은 불교 미술의 보고이자 인도 회화의 금자탑으로 평가받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불교가 쇠퇴하면서 천 년이 넘도록 방치되어 있다가, 1819년 호랑이 사냥을 나섰던 동인도 회사 소속의 영국 병사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가끔 이런 식으로 인도의 역사가 서양의 입장에서 써지는 것이 못 마땅하지만 말이다. 놀라운 것은 발견 당시 긴 세월동안 먼지층이 두텁게 쌓여 벽화의 색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그랬던 벽화가 어설픈 보수 작업으로 심각하게 훼손되어 앞으로 50년 앞도 보장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는 안타까운 사실이다. 

훼손상태가 너무 심각해 벽화를 제대로 보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불교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어 사원군의 가치를 충분히 읽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불교의 발생지에서 바라보는 부처의 얼굴은 특별하게 와 닿았다. 최근 들어 카스트 제도에 반대하는 정치운동이 불교를 전면에 내세우며 불교가 재조명된다는 점에서도 불교의 탄생 배경을 엿볼 수 있어 반가웠다.



언덕 중턱에 자리한 아잔타 석굴을 돌아보는 것은 만만하지 않다. 우연히 사원에서 바닥에 몸을 던져 절하는, 일명 오체투지하는 순례객들을 만났다. 어디에서 왔냐고 묻자, 라다크에서 왔다고 한다. 라다크는 인도의 최북단에 위치한 작은 티베트 공동체가 자리한 곳으로, 개방이 되기 전까지 마지막 남은 지상낙원으로 불리던 곳이다.

오체투지는 두 무릎과 두 팔꿈치와 이마를 땅에 대고, 두 손을 뻗어 자신을 낮추어 절을 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참구하기'에 이르는 수행법이라고 한다. 

마지막 26번 사원 앞에서 오체투지를 마치고 땀을 식히고 있었다. 모든 것을 비워내고 다시 모든 것을 얻은 듯한, 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짓고 있는 라다키 어른들의 얼굴이 순간 불교도에 대한 지난 오해를 불식시켜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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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샨티퀸 트랙백 0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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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JUYONG PAPA 2008.06.25 12:06 신고

    저런 절벽에 사원을 짓는 것이 가히 쉽지만은 않았을 터인데...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랐을까요.
    저런 곳을 볼 때마다 대단함을 느끼는 동시에 아쉬움도 많이 느끼곤 하네요.

    • addr | edit/del 샨티퀸 2008.06.25 23:18 신고

      그쵸, 그래도 궁전이나 무덤을 건설하던 것과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2. addr | edit/del | reply chapi 2008.06.26 23:17 신고

    아~~ 신랑과 와인한잔...
    그래서 글보기가 힘들어요.
    그래도 술을 한잔 해서인지 여행이 더 가고 싶다.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지만 그건 힘든일이니 가까운 산에라도...
    그대가 보고싶소.

    • addr | edit/del 샨티퀸 2008.06.27 01:49 신고

      채피! 지금 술주정 중? ㅎㅎㅎ 가까운 산이라도. 저는 곧 남도 여행을 떠날까 합니다. 나도 보고싶습니다^^

  3. addr | edit/del | reply 레디오빠 2008.06.27 02:48 신고

    인도에서 불교를 앞세운 정치운동이 있다고 하니 재밌네요. 인도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지라, 막연하게 '인도=힌두교'만을 생각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도 참 무지하네요.. ㅠㅠ
    인도에서 불교가 하나의 독립된 종교로 받아들여지나요? 힌두교에서는 부처도 수많은 힌두 신 중 하나로 여긴다고 어렴풋하게 어디서 읽은 기억이 나는 것 같은데..

    • addr | edit/del 샨티퀸 2008.06.28 09:48 신고

      아이쿠, 제가 이런 답글을 달게 되다니요^^. 인도가 워낙 힌두 전통이 강한 사회라서, 레디오빠님이 알고 계신 것처럼 부처도 힌두 신의 하나로 여긴대요. 힌두 신 비쉬누의 화신 중 하나로 말이죠. 그런데 초대 인도 법무부장관을 지낸 불가촉천민 출신 암베드카르 박사를 중심으로 불교의 인간평등 사상을 기반으로 한 신불교운동이 전개되면서 천민들의 집단개종이 이어지고 있다네요. 이 운동에는 부처가 비쉬누의 화신이라는 설을 거부하는 것이 주요한 교리라네요. 즉 독립적인 종교로서 불교를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인도는 힌두교가 단순히 종교를 넘어서서 카스트와 연계되어 인도 사회의 권력구조를 공고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자연스레 카스트에 반대하는 정치적 움직임 또한 평등 사상을 근거로 하는 종교의 힘을 빌리게 되는 거겠죠. 모쪼록 그 운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해방과 구원을 주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