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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너무 비좁다고 느껴질 때마다
인도에 대해 생각한다.
시체를 태우는 갠지스 강;
물위 그림자 큰 새가
피안을 끌고 가는 것을 보고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기절해 쓰러져버린 인도 청년에 대해 생각한다.

여기가 비좁다고 느껴질 때마다
히말라야 근처에까지 갔다가
산그늘이 잡아당기면 딸려들어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여행자에 대해 생각한다.


-황지우의 <等雨量線 1> 中에서-




08.01.18
바라나시 1편 - 노스탤지어의 강가 바라나시

언제나 꿈꾸던 도시 바라나시.
가장 가슴 따뜻한 인도 여행기를 썼던,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작가 마크트웨인은 이곳을
'역사보다, 전통보다, 전설보다 오래된 도시'라고 칭했다.

설렘을 달래가며 인도방랑 한달이 지나서야 다다른 바라나시였다.
잘가온에서 기차로 26시간을 달려오면서 바라나시에 도착하면 ‘울컥 눈물이 날까’ 생각하며 한껏 부풀어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숙소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라나시 풍경


막상 바라나시에서는 마치 전에도 와 봤던 것처럼 익숙한 일상이 시작됐다.
때가 되면 밥을 먹고, 가트에 앉아 짜이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군대에 간 사람들이 문자를 그리워하듯, 문득 책이 읽고 싶어져 매일 화장터를 지나 한국 까페를 찾았다.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삼십세>, ‘레고로 만든 집’이 실린 <신춘문예 당선소설작품집>, 내사랑 바나나의 <하드보일드 하드럭>, 인도와 인접한 아프간 여성의 이야기 <천개의 찬란한 태양>, 춤꾼 홍신자 선생의 <자유를 위한 변명>, 류시화 시인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 등을 읽었다.
 
나는 류시화 시인이 바라나시에 갈 때마다 묵는다는 비쉬누 레스트 하우스에 머물며,
숙소 앞 가트에 앉아 하루에도 몇 잔씩 이모짱 구멍가게 짜이를 마시곤 했다.

짜이가게 주인 이름이 ‘바깔루’ 인데, 힌디어로 감자라는 뜻이란다.
그걸 듣고 한 일본 여행객이 감자라는 뜻의 일본어인 “이모짱”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단다.
그런데 어느새 일본여행객이 거쳐가고 한국여행객들이 몰려들면서 “마더 시스터”라고 한다며 바깔루는 “나 여자 아니예요”라고 웃으며 말한다.

나는 뤂탑과 이어져 전경이 일품인 이층방에 머물렀는데, 멀리 찾아나설 필요도 없이 그곳에서 요가를 배웠다.
아침마다 문 두드리는 소리에 밖으로 나가면 요기(요가 수련자) 마노지가 큼지막한 목화솜 이불을 바닥에 깔아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에서와 달리 한 두 동작을 긴 호흡으로 두 시간이 넘게 요가를 하고 “옴 샨티 샨티 샨티” 를 따라하며 마무리했다. 그간 여행길에서의 피로와 긴장이 다 풀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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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한국이 그리웠다. 가족들과 두고온 남자친구의 얼굴, 그리고 노란 빛이 퍼져 나오던 돔이 떠올랐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는 회의나 브리핑을 쫓아다니고 나면 하루해가 저물던 그때, 어설프게 차려입은 정장과 높은 굽 구두를 벗어놓고 요가를 하던 곳이다. 마징가 제트가 나온다는 오랜 개그속의 지붕이 가장 가까게 올려다 보이는 그곳에 누워있을때면 언제나 갠지스 강가를 떠올렸다. 혹자는 가장 다이나믹한 곳이라지만 분주하기만 할 뿐 개인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그곳이 비좁다고 느껴질때면 어머니 품속 같은 너른 공간 바라나시를 떠올렸던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바라나시 일대가 내려다 보이는 옥상에 누워 이 모습을 꿈꾸던 때를 다시 그리워 하고 있는 것이다.

일어나 가트변과 강가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가만보니 이 풍경 또한 많이 보던 것이다. 비쉬누에 머물며 이모짱 짜이를 사랑했다는 한 여행객의 블로그에서 보던 사진과 같은 풍경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숙소에서 내려다 보이는 전경 : 분홍색 건물이 이모짱 짜이가게, 주변에 언제나 여행객들이 모여든다.


하루는 가트에 앉아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읽고 있는데 바깔루의 형제 선재씨가 오더니 자신의 이름이 이 책에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선재씨 이름을 찾지 못했다.  

지난주 금요일 W를 보고 김혜자 선생님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다시 꺼내 읽었는데, 뜻밖에도 거기에 선재씨가 있었다. 죽고 싶다던 김혜자 선생님을 인도로 안내했던 시인은 분명 류시화를 말하는 것일 테고, 류시화가 바라나시에서 머무는 곳은 당연히 비쉬누 레스트 하우스를 말하는 것일 테고, 그 아래 가트 변의 짜이 가게의 '선자이'는 내가 아는 선재씨를 말하는 것이라는 확신에 몹시 반가웠다.  

삶과 죽음을 한데 품고 있는 힌두교의 최대성지 바라나시에는 어느새 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이 한데 엉켜 있다. 과연 '역사보다, 전통보다, 전설보다 오래된 도시'라 칭할 만 하다.

가보지 않은 사람도 그리워하고 가본 사람은 반드시 또 가고 싶어하는 노스탤지어의 강가 바라나시.
이제 누군가 바라나시 얘기를 하면 마치 고향 사람이라도 만난 것처럼 기뻐하며 맞장구를 칠 것 같다.
나는 오늘도 바라나시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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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샨티퀸 트랙백 0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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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chapi 2008.07.04 22:58 신고

    그러게...나도 가고싶다.

  2. addr | edit/del | reply 혜란 2008.09.17 23:39 신고

    바라나시,
    새겼어요. ^^

  3. addr | edit/del | reply 갈매나무 2009.05.03 22:19 신고

    앗! 안녕하세요! 우연히... 검색으로 들어오게 됐는데요,
    저랑 같은 기간에 같은 숙소에 머무셨던것 같네요. 저도 1월 18일 즈음부터 바라나시, 비쉬누 레스트 하우스 도미토리에 며칠 묵었거든요. 눈팅만 하고 가려다가 신기해서 흔적 남기고 갑니다^^
    심지어... 보트 세 척 떠 있는 갠지스강 사진도... 제가 찍은 어떤 사진과 비슷하네요. 그 때 보트맨들 파업중이었었지요.

    • addr | edit/del 샨티퀸 2009.05.03 23:58 신고

      갈매나무님, 저는 은사시와 자작나무의 친구랍니다. 반갑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