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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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때 친동생처럼 아끼던 교회후배와 함께 'Before sunrise'를 봤었다.
선을 넘을 듯 말 듯 한 심리와 그 심리가 그대로 드러난 대화를 두 시간 가까이 들으려니, 내 옆에 앉아있는 후배가 조금은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였는지 옷도 바뀌지 않고, 등장인물도 바뀌지 않는 그 영화가 조금은 길게 느껴졌던 영화의 시간흐름과 같은 속도로 흘렀던 내 감정들이 생생하다. 후훗,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단호크의 자유로운 건강미와 줄리델피의 깨끗한 아름다움, 그리고 유럽횡단열차의 낭만은 오랫동안 부러움으로 남아 있었다. 당시, 대학에 가면 줄리델피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겠다고 맘을 먹기도 했었다.
 
비포선셋을 봤다.
에단호크와 줄리델피가 등장하자, 새삼 그로부터 9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을 상기시켜줬다. 삶이 고단해 보일만큼 야위고 주름이 자리를 잡은 에단호크의 얼굴에서는 이전의 젊은 건강미가 보이지 않았다. 줄리델피 역시 깨끗하고 사랑스러워 보이던 9년전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순간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둘의 만남의 대화가 진행되면서 그들에게 받았던 당혹감이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여전히 그들은 화장을 고치지도 않았고 옷을 갈아입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특히나 환경투사로 변한 줄리델피 캐릭터는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다소 수다스럽게 느껴지는 그녀의 대화를 에단호크와 함께 엿들으면서 그녀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었다.
 
미국인들의 생활을 말하면서 드러낸 쾌활함에 대한 부러움,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 광고가 없는 나라 동유럽 폴란드에서의 소중한 생활체험담, 고양이에게 지어준 사랑스런 이름 ‘Che’, 그냥 왈츠곡이라며 부르는 에단호크와의 9년전 사랑 멜로디,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기억하며 엉덩이를 흔들던 모습, 특히나 자기랑 사귀었던 사람들은 모두 자기랑 헤어지고 나면 결혼한다며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우는 모습까지 재미없는 환경투사 그녀의 모든 것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영화가 끝나자, 한막이 내리고 이어서 두번째 막이 이어질 것만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 지지가 않았다. 게다가 이런 서정적인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할 듯했던 친구가 ‘감독이 천재이다’라며 영화의 재미와 감동에 빠져 나보다 더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Posted by 샨티퀸 트랙백 1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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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미로속의루나입니다 2008.07.10 00:51 신고

    비포 선라이즈를 보면서 정말로 설레던 기억이 나네요.
    자 그 다음은, 또 그 다음은. 설레임의 연속이었던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라이즈를 비포 선셋이 개봉된 후에 봤었는데.
    흠. 전 왜 그 시간의 격차를 크게 느끼지 못했을까요?
    비포 선라이즈의 설렘이 비포 선셋에서도 그대로 느껴져서 정말 좋았던 영화였던 것 같아요.

    • addr | edit/del 샨티퀸 2008.07.10 00:57 신고

      이어서 보면 더 좋을 거 같애요.
      로맨스 라인에서만 영화를 봤지만, 줄리델피는 정말 멋진 역인것 같아요. 비포선라이즈에서 에단호크를 만나서 미국에서 왔다니까, 그럼 영어 하나밖에 모르겠네라고 선방!하던 게 기억나요. 저야말로 이어서 다시 한번 봐야겠네요 ^^

  2. addr | edit/del | reply chapi 2008.07.13 23:51 신고

    비포 선라이즈의 에탄의 회색티에 조금 나온 배가...비포 선셋에선 줄리델피의 주름이 아주 아름다웠지요.

  3. addr | edit/del | reply 딸뿡 2008.07.17 13:54 신고

    저도 아직.... 마지막 장면이 잊히질 않아요... 가야할 시각이 다 된 줄 알면서도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에단 호크의 모습.... 저는 비포 선셋이 더 좋더라고요. 나이를 조금이라도 먹었기 때문일까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영화였고 말고요.... 이런 느낌의 영화, 다시금 한 번 더 만들어줬으면 좋겠는데.. 이때 받은 아스라한 느낌이 요즘 영화에서는 어쩐지 덜 한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래요 :)

    • addr | edit/del 샨티퀸 2008.07.17 15:50 신고

      "나이를 조금이라도" 공감입니다. 감독과 두 배우가 만들어낸 주옥같은 영화죠. 그중 한명이라도 없었음 이런 영화가 안 나왔겠죠?

  4. addr | edit/del | reply 소피 2008.08.07 03:13 신고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여전히 라는 말이 있는데요. 비포선셋도 그랬던 것 같아요. 산타퀸님도 말한것처럼. 여전히 반짝이는 그들, 치장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움으로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 그들. 참 좋았어요.

    • addr | edit/del 샨티퀸 2008.08.07 22:42 신고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처럼 반가울때가 바로 영화취향이 같은 사람을 만날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