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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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체. 여행.
나를 흥분시키기에 완벽한 3가지 요소를 갖춘 영화기에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천식환자이자 럭비선수이고 의대생으로 가족의 울타리안에서 보호받으며 모범적으로 자란 23살의 아르헨티나 청년 체가 그와 무려 7살차이가 나는 알베르트 형과 함께 남미대륙을 찾아떠난다. 포데로사라는 구형 모터싸이클에 몸을 싣고, 8개월간의 여행에서 문명을 벗어나 대륙속으로 몸을 담근다.

영화는 드라마틱하게 전개되지 않는다.
영상에는 남미 특유의 정열적인 색채조차 담기지 않았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는 매혹적인 눈매마저 과시하지 않는다.

영화의 체는 내가 알고 있던 체와 달랐다.

내가 알고 있는 체는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체란 체게바라 평전과 사진에서 본 모습이 전부이지만, 건장한 체구에 서글서글한 눈매, 세상권력으로부터 달관한듯한 넉넉하고 여유로운 체, 삶 전체에서 풍겨져 나오는 낭만과 열정의 체였다.

그러나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연기한 영화의 체는 천식으로 언제나 죽음의 문턱을 체험하는 듯한 연약한 체, 융통성이 없으리만치 정직한 체, 어딘지 모르게 움츠러 있는 듯한 소심한 체였다.

체의 여행길에 만난 사람들은 하루하루의 끼니와 숙박의 수단으로, 마을 축제는 하룻밤 여행의 기운을 북돋아주는 촉진제로, 특별한 여행의 하루하루가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지나가듯 흘러간다. 그러던 중 사막에서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마을에서 쫓겨난 가난한 부부를 만나게 되면서, 자본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고 이념에 의해 일자리마저 빼앗긴 사람들의 모습을 목도하게 되는 체는 남미대륙의 운명을 돌아본다. 또한 한 문명을 세우기 위해 다른 문명을 파괴한 상흔의 도시, 잉카문명의 고대도시 쿠스코에서 체는 "총을 수반한 혁명"을 구상하기에 이른다.

나병환자촌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체의 모습을 담을 때 쯤 영화는 살짝 극적으로 전환을 한다. 강 사이로 한쪽에는 수녀와 의사가 그 반대편에는 나환자들이 생활하는 섬에서 체는 맨손으로 환자들과 스킨쉽을 하고, 그들과 친구가 되면서 강의 경계를 허물러 뜨린다.

여행이 끝나며 알베르트는 한 병원에 취업을 보장받게 되고, 체는 마치 또다른 여행을 떠나는 듯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체는 말한다. "과거의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라고. 그 순간 영화가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언어와 문화가 다름에도 감독은 또박또박 차분하게 체에 대해 여행에 대해 혁명에 대해 나에게 말해주는 것에 성공한다. 혁명가 이전의 체의 모습을 만났다는 것, 그것은 나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과 같은 뜨거운 감동이었다. 오버스럽지 않은 진중한 연기자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에게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갈채를 보낸다.

또 다시 가슴에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여행의 막다른 길목에서 나의 또다른 삶의 방향을 안내해줄 것만 같은 바람이 내 가슴에 일기 시작한다.

Posted by 샨티퀸 트랙백 1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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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chapi 2008.07.13 23:34 신고

    영화들이 주로 내가 씨네코아에서 본것들인데 이제는 작어져버린...
    아니다 이건 코아아트홀에서 봤나?
    여튼 내가 좋아하는 극장은 문을 닫는다...
    아~~~~

    • addr | edit/del 샨티퀸 2008.07.15 01:43 신고

      영화관을 사수하세요. 스크린쿼터는 정작 헐리우드 영화에서 없어져야 해요. 우린 다양한 영화를 보고 싶다구!

  2. addr | edit/del | reply 소피 2008.08.07 03:11 신고

    저는 이 영화를 씨네큐브에서 봤어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관이기도 한.
    모터사이클 소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 조금 웃길 수도 있겠지만, 이때 모토사이클 소리가 내겐 바람소리가 같아서 그 소리를 쫓아서 어디론가 막 떠나고프기도 했고, 그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