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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허우샤오시엔 감독을 제일 좋아한다.
2005년 초여름 <까페 뤼미에르> 단 한편의 영화를 보고 나는 기꺼이 허우 샤우시엔을 최고로 인정했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다 겪어봐야 아는 것은 아니다. 진심을 보고 내린 판단이라면 언제나 그걸로 족하다. 
 
그 뒤 부산영화제 출품작이었던 <쓰리타임즈>와 <빨간 풍선>을 보았지만, 영화는 극장에서만 보는 걸 고집하는 나이기에, 언제나 허우샤오시엔의 초기작품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고맙게도 얼마 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제2회대만영화제가 열렸다. 욕심 부리지 않고, 아니 큰 욕심을 부려 허우샤우시엔 영화만 다 봤다. 그 중에서 <동동의 여름방학>을 보는 동안 나는 자꾸만 두 손을 모으고 상체를 45도 각도로 기울인 채 스크린을 향해 있었다. 나의 유년의 기억과 맞닿아 영상들이 살아 숨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엄마가 아파서 시골에 있는 외가에 내려가 여름방학을 보내게 되는 동동과 팅팅의 이야기이다. 냇가에서 발가벗고 물놀이를 하던 모습부터, 오빠 친구들과 함께 놀고 싶어하는 팅팅, 그런 동생을 떼놓고 싶어하는 동동의 신경전, 미친여자 한즈의 임신같은 모든 시나리오는 이미 내 오래된 기억 속에서 풀어져 나왔다. 가장 아름다웠던 한때로 시간 여행을 떠난 것처럼 말이다.    

그 기억들을 긴 호흡으로 찬찬히 조명해준 허우샤우시엔의 시선이 너무 고맙다.  
뜨거운 햇볕 아래 도랑에서 헤엄치며 구구락지 같은 모습으로 자라났던 유년시절이 그립고,
모자라고 어리숙해도 잉여인간이 하나 없던 고향 마을이 그립다. 

경제성장과 효율성이 우선시되는 근대화 과정에서 속도에 대한 의문을 넌지시 던지는 이 영화는
다른 것을 다 차치하고서라도 들에 뛰어노는 천진한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빛나는 영화이다.

아래 두 개의 글귀로 영화평을 대신한다.
쓰지 신이치의 <슬로 라이프>, 놀기(193p) 대목에 나오는 글귀이다.


노는 아이들 소리 들으면
내 몸까지도 흔들리네
놀려고 태어난 게지,
까불며 새롱대러 세상에 난 게야
아이들 노는 소리 들려 오면
내 몸까지도 절로 흔들려 오네

                                                                             - 12세기 후반의 일본노래집 “료진히쇼” 中 -



참새떼들이 제멋대로 날아다니다 무리 지어 날아오르는 것처럼,
그들은 마음대로 무리를 지어 놀다가 일제히 달아난다.
그러한 뒷모습은 우리에게 무언가 말해주지 않는가?
                 실제로 노는 아이들의 소리는 우리의 영혼까지도 뒤흔들어 놓는다.
                 

                             
                                                                      - 다다 미치타로의 놀이와 일본인 中 -




Posted by 샨티퀸 트랙백 1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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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chapi 2008.07.13 23:27 신고

    나두 진짜 좋아하는 감독이요.
    '카페 뤼미에르'는 소장하고 있기도 하고 내가 가장좋아하는 영화10개중에 하나지요.

    이제는 극장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금은 누리지 못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서 나에게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 책읽기와 산에가는것과 영화보기는 나의 노년의 꿈이라오.

    좋은 영화는 살아가는 힘을주기도 하지...
    아~~ 모유수유가 끝나면 젤 먼저 영화를 보고 싶소.

    예전의 그 서울아트시네마는 없어졌지만 낙원상가의 극장도 나름 좋지...

    여튼...
    여길 오면 내삶을 돌아보게 되는듯해서 좋소.
    고맙소...

  2. addr | edit/del | reply 샨티퀸 2008.07.15 01:41 신고

    채피와 함께 영화를 보던 때도 오래 전이군요.
    노년까지 갈 필요 있나봐. 곧 꿈은 이뤄질 겁니다.
    사색과 성찰만으로도 충분히 멋지게 살아가고 있으니, 힘내요. 채피!

  3. addr | edit/del | reply 소피 2008.08.07 03:21 신고

    샤오시엔 감독님 영화를 보면 시간이 잠시 정지된 듯, 또 그 안에서 다시 그만의 시간이 흐른듯 해서 저도 참 좋아한답니다. 비정성시부터~ 까페 뤼미에르, 동동의 여름방학까지..

    • addr | edit/del 샨티퀸 2008.08.07 22:46 신고

      소피님은 빛의 유희뿐 아니라 언어의 유희 또한 즐기시는군요. 표현이 참 멋지세요. 앗 근데 동동의 여름방학 보셨어요? @@ 아, 반가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