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3. 3 / hampi

3월은 March
행진하는 달이라며, 아쉬워하는 보리와 산투, 미오를 뒤로 하고 함피로 향했다.

- 너 스모킹 하니?
- 아니
- 너 약 하니?
- 아니
- 그럼 너 고아에서 뭐하니?
- 이씽

파티에서 만난 프랑스 녀석과 나눈 짧은 대화처럼, 고아에서는 그야말로 남의 세상에 구경 온 사람 같았다.

고아에서 함피로 버스를 타고 오면서 계속 영어를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방인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미오가 여행 중 수없이 만났다는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라도 만나고 싶었다.

다음날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 맞은편 칸에 자던 남자가 나에게 코리안 인지를 묻더니, 한글 주석이 달린 허밍웨이의 책을 건네준다. 어디서 났냐고 묻자, 한국에서 영어강사로 일한단다.

버스에서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나를 기다려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나에게 소중한 것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엄마는 얼굴 새카매지면 빨리 늙는다며 조심하라는 말, 그 짧은 통화 중에도 잊지 않으셨다.

필립과 한국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한국사람들은 꼭 나이를 묻더라, 그때마다 얼마나 불쾌한지 알아? 무례하기로 치면 처음 만난 인도사람들이 직업이 뭐냐고 물은 뒤 얼마를 버냐고 묻는 거나 다름 없다니까.

왜 한국 사람들은 초면에 나이를 물을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산투의 한국어 교재에는 나이가 많으면 존댓말을 하기 위해서라고 그 이유를 설명해 놨는데, 그것으론 부족하다.

왜일까. 안나 언니가 말한 유교의 영향일까. 언니는 유교 관련 공부를 하고 매우 놀랐다고 한다. 기독교 선교사 가정에서 태어나 기독교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자기는 언제나 유교 영향 아래 있었다고. 자기가 자주 하던 말이 “나이 들어서 왜 저러냐” “나이 값도 못 한다”는 표현이었다며.

나는 한국사회의 획일성에서 그 이유를 찾아본다. 0-7세는 부모 아래, 8-20세는 교실 아래, 20-25세는 대학 또는 군대 속에, 25-30세는 기업이나 조직 아래, 이렇게 나이에 따라 정형화된 길이 있어서 나이만 물으면 충분히 그 사람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나 역시 한 번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태양을 좋아하고 바다를 좋아한다는 이 청년에게 가을을 좋아한다고 바다보다는 산을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가을은 비가 와서 싫다는 청년에게 비를 무척 좋아한다고 말했다.

반갑게도 영화보는 코드가 일치했다. 도그빌, 어둠 속의 댄서, 이터널 션샤인, 수면의 과학에서 시작한 영화 이야기가 끝이 나지 않는다. 필립이 한국으로 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 또한 영화였다고 한다. 김기덕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그리고 바다를 좋아해서 부산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새삼 한국 영화의 힘에, 김기덕의 영향력에 놀라웠다.  

영어권 나라에 여행한 적이 있냐고 묻던 필립은 내 영어가 매우 훌륭하다며 놀라워한다. 2년이나 한국에 살았지만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자신을 아이로 만들었다며! 

함피, 상상의 장소에 왔다. 아주 마음에 든다. 나만의 장소가 되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는 걸 안다. 언제나 처음에는 권위자가 표현한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풍경” 이런 말로만 나의 생각을 지배한다. 심지어는 책이나 블로그에서 보았던 다른 사람의 경험담, 느낌을 마치 내 것처럼 착각할 때도 있다. 그러나 내 추억을 만들고 내 감정이 실리면 그곳은 진짜 내 장소가 된다. 

그러나 함피에서의 첫날, synchronicity가 느껴진다. 나와 밀애의 장소가 될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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