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rian effect

2009.09.25 00:45 from 다정한 아시아

하루는 테리아에게 삐져서 저녁도 먹지 않고 방에 누워있었다.

내가 안 보이자 뿌까와 나이가 방으로 찾아왔다.
그냥 몸이 좀 안 좋다고 했다. 
실제로 머리도 지끈, 열이 나는 것도 같다.

납작 자세를 엎드린 테리아와 한참을 얘기한 뒤 마음을 풀었다.
나는 가끔 이런 싸움을 즐긴다.

몸이 아플 정도로 넉다운된 상태에서
상대의 눈에서 눈물을 쏙 빼놓을 만큼 절박한 상황을 만든 뒤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다시 충만해지는 일련의 과정이랄까,
ㅎㅎ 그래, 나 변태 맞다! 

잠시 후 나이가 다시 방문을 두드리더니  
죽과 함께 감기약을 들고 올라왔다. 

쟁반 위에 하얀 죽과 반찬들이 놓여있다.
아플때 집에서 먹던 밥상과 똑같아
이 무안반 친구들에게 감동과 친밀감이 확 밀려왔다.


테리아와 싸운 줄도 모른채,
나이와 뿌까는 아마도 낮에 먹은 두리안 때문에 아픈것 같다며 걱정을 했다.

낮에 본 책에 의하면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중국과 동남아 사람들은 두리안을 먹으면 열이 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하던데
엄한 두리안을 욕먹이고, 두리안에 대한 경험칙에 의한 믿음을 더 공고히 시킨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

타이레놀을 권하는 친구들 앞에서
꾀병 부리다 걸린 어린애처럼 앉아 테리아에게 눈짓을 하며,
이심전심 무안반 친구들에게 고마워하고 미안해했다.
 
하루종일  함께 움직이고, 밥도 같이 먹고, 같이 자고, 만나는 사람들도 같고,
그때그때의 생각, 느낌, 판단 모든 걸 테리아와 나누고 재잘거린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 중에는 일기도 쓰지 않았다. 
여행의 모든 순간은 테리아와 나눈 대화 속에 담아 놓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수많은 대화들은 지금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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