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피에 가면 강 건너편에 머물라고들 말한다. 대표적인 유적지는 다운타운에 모여 있고 강을 오가는 배가 6시면 끊기지만, 샨티샨티 평화롭고 여유로운 진정한 함피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함피 메인 바자르에서 강을 건너면 강가파디 간디가 나온다. 강 건너편에도 게스트하우스와 레스토랑이 군락을 이룬 메인거리가 나온다. 메인거리를 지나 논이랑을 거쳐 내가 찾아온 곳은 만주 팰리스다. 함피의 매력은 깊은 곳일수록 진짜 함피를 만날 수 있다는 것과, 그런 함피를 더욱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담요를 발끝까지 덮어야만 추위를 면할 수 있는 아침 6시에서 7시 사이쯤 눈을 떴다. 세수만 하고 급하게 길을 나섰다. 뜨거운 정오가 되기 전에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언덕을 하나 넘자 끝인 줄 알았던 곳에서 새로운 마을이 나타났다. 두 번의 개울을 건너 어린 뱃사공을 만났다. 강을 건너고 싶다고 말하고 대나무를 짜서 만든 동그란 광주리 배에 올랐다. 빙글빙글 돌아가며 물살을 헤쳐간다. 간간히 물이 차 오르고, 거친 물줄기를 만나자 어린 뱃사공의 손놀림이 바빠진다. 아직 해가 오르지 않아 선선한 바람이 분다.


나는 이 광주리 배를 타고 비딸라 사원에 당도했다. 

사원 안에 들어가자 경찰이 가이드에 나선다. 샨티샨티를 원한다고 거절하자, 자기도 샨티샨티하면 된단다. 이번엔 거절하지 않았다. 이 템플의 유일한 원숭이를 소개해주고 56개의 음악기둥 중 현재 11개만 소리가 난다는 음악기둥을 만지게 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매일 하누만 템플에서 머리에 꽂던 꽃의 이름을 알려 주었다

“God Flower" 


사원에서 다시 광주리 배를 타고 돌아왔다.

뱃사공이 나를 엉뚱한데 내려줘 걸어서 강을 건너야했다. 수영하는 소년들을 만났다. 그들은 내가 건너는 것을 도와주겠다며 내 손에 들린 트레킹화를 서로 패스하며 놀다가 결국 물에 빠뜨렸다. 웃으며 도망가는 녀석에게 부러 화를 내 봤다. 그러자 풍덩 물 속으로 잠수를 한다. 그 모습이 어찌나 천진하고 사랑스러운지, 참지 못하고 내가 먼저 웃음보를 터트리자 그제서야 ‘쏘리 쏘리’를 외친다. 맨발로 걷기는 제법 어렵다. 흙이 워낙 뜨거워서 발이 땅에 닿자마자 타버릴 것만 같다. 게다가 낮게 깔린 풀과 나무가 하나같이 가시투성이어서 괴롭다. 

반갑게도 마을이 있었다. 몇 개의 게스트하우스도 있었다. 아니 이런 곳에까지!
바바에서 탈리를 주문했다. 프랑스인 파스칼은 이곳에 산다. 그는 바바의 여주인 따라와 이야기 중이었다. 아주 오랜 이웃처럼. 아니나 다를까 10년째 함피에 살고 있단다. 그리고 잠깐 그의 옆에 검은 옷을 입고 강아지를 끌고 나온 여자는 함피 동굴에서 15년째 살고 있단다. 파스칼은 함피에서 정원을 가꾸고 함피에 관한 글을 쓴다고 한다. 작년에는 무슬림과 힌두간의 큰 싸움이 있었고, 다음 달엔 선거가 있을 것이라며 선거가 끝나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한달 내내 술만 마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이야기는 어느 곳이나 같아서 순간 웃음이 나왔다.

이따이가 남겨준 메모를 들고 이따이를 만나러 시마 하우스를 찾아갔다. 이따이는 없었지만 대여섯명의 히피들이 있었다. 이곳에 있는 한 영국 남자는 36년전 처음 함피에 왔단다. 너무 뜨겁고 지쳐 돌아갈 힘이 없었다. 이곳에서 이따이를 기다리기로 했다. 시원한 걸 마셔야겠어서 주문을 했더니 주인들은 지금 장보러 나갔고 원하는 게 있으면 냉장고에서 꺼내 먹으란다. 잠시 후 생선장수가 등장하고 그들은 열심히 흥정에 들어가더니 팔뚝만한 물고기를 70루피에 샀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여행자들의 필독서라고 생각하는 오래된 미래는 나에게 여행자들이 현지인들에게 줄 수 있는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나의 여행하는 자세를 완전히 바꿔놓은 힘 있는 책이다. 

인도 북부 라다크에 정착한 티벳공동체의 오랜 전통과 사회상에서 현대 사회가 추구해야 할 대안적인 미래상을 발견하는 '전통' 챕터가 끝나고 개방과 함께 서구 여행자들이 들어온 이후 라다크가 어떻게 변하는지 묘사가 이어지는 대목이었다.

이따이가 돌아왔고 우리는 이따이 방 앞에 쳐있는 빨간색과 진남색 해먹에 각각 올라가 책을 읽었다. 이따이가 존 레논을 플레이시킨다. 한두시간 후쯤 주인이 트럭과 함께 돌아왔다. TV를 한 대 사왔다. 주인 아이들이 세네명 되어 보였는데 모두 신기하고 흥분된 모양새로 TV주변에 모여들었다. 한 여행객이 아이들에게 말한다. TV는 좋지 않다고, 이제 매일 TV앞에서 넋놓고 있게 될 것이라고. 이제 내년에 오면 play station에 큰 스크린을 치고 영화를 상영할 거냐고, 더 이상 자연은 보지 않게 될 것이라고.

아 맞다, 이따이 방 안에는 커다란 바위가 솟아있다. 어떤 방안에는 나무 기둥이 있다. 내가 화장실을 찾자 언덕에 소 한 마리를 가르키며 소 다음에 오른쪽이라고 답한다. 마당에는 닭, 원숭이, 소, 개가 제각기 뛰어다닌다. 이곳엔 수도도 없다. 

선셋을 보기 위해 하누만템플에 갔다 카페에서 이따이와 12시 가까이 대화를 나누다 어둠속에 각자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갔다. 해가 지고 나면 불빛도 인적도 없어 조심해야 하는데 이날은 끝까지 예외였다. 

다음날 프란츠에게 내가 돌았던 하루 동선 얘기를 들려줬다. 프란츠는 며칠 전 망고트리에서 만난 독일아저씨다. 함피의 전설을 좇아 트렁크를 끌고 열흘동안 휴가를 온 프란츠는 고급호텔에 묵으며, 해가 떨어지면 혼자 호텔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무척 아쉬워 하고 있었다. 흙과 짚으로 지어진 방갈로에 침대만 하나 있고 공동 욕실과 화장실은 뚝 떨어져 있지만, 밤마다 여행자들이 모여 웃음꽃을 피우는 곳이라고 만주를 소개하자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고 옮겨왔다. 


프란츠의 친구는 15년 전에 인도에서 6개월 여행을 했단다. 당시에는 함피에 게스트 하우스가 5개 뿐이었다고 한다. 관광지로 변한 함피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그 이후로 다시는 인도에 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때의 함피를 기억하기 위해. 그들은 계속해서 도망치는 것 같다. 그들의 천국을 찾아서. 오래된 미래를 찾아서... 

프란츠는 내 얘기를 들으며 몹시 흥미로워하다가, 내가 지도 밖으로 동선을 그려보이자 "You are really crazy girl"이란다. 미친년이라는데 나에겐 최고의 찬사로 들린다. 인도 여행자끼리 쓰는 crazy에는 언제나 존경의 표현이 들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더니 혼자 감격에 겨운듯 Hippy is still alive"라고 외치며, 독일에서 프린트해 온 칼럼을 영어로 해석해 준다. 1969년에 처음 히피가 함피에 왔고, 1986년에 세명의 여행자가 동굴에 살았고, 1992년에는 5개의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다는 함피의 전설에 관한 아티클이었다. 

프란츠는 떠났다. 마침 펜이 바닥나서 나는 프란츠에게 익살을 떨며 인도 아이들처럼 물었다. “Do you have a school pen?" 프란츠에게 berlin 호텔 이름이 새겨져 있는 볼펜을 선물로 받고 아이처럼 기뻐했다. 배 타는 곳까지 배웅을 하자, 자신의 트렁크를 부끄러워하듯 다음엔 배낭을 메고 긴 시간을 갖고 가족들과 함께 다시 함피를 찾겠다는 인사를 전했다. 


프란츠의 뒷모습을 보며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아서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는 성경 속의 농부가 생각났다. 나에게 함피는 천국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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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nicing 2009.10.09 09:52 신고

    그리운 곳... 이뻐요..^^

  2. addr | edit/del | reply herenow 2009.10.12 08:47 신고

    노을이 참 좋네요...

  3. addr | edit/del | reply 바람처럼~ 2009.10.12 18:57 신고

    항상 보면 여행자의 모습을 많이 느끼고 갑니다~
    진정한 여행자이신듯 ㅋㅋㅋ
    그리고 저 광주리 배 무척 신기하네요 ㅋ

  4. addr | edit/del | reply nicing 2009.10.13 11:30 신고

    꽃잔치님도 저처럼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을까요?
    아님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처럼 다시 그곳에 가기위해 준비하고 있을가요?

  5. addr | edit/del | reply meru 2009.11.10 02:46 신고

    사진을 보니 몽롱하네요...인도의 하늘이 그려지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