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월요일

2010.05.25 16:27 from 마음을 쓰다
하루종일 비가 내린다. 1301 주황색 버스는 한시간 반이 넘도록 올 생각을 않는다. 사업을 시작한 언니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 일손을 거들러 일주일째 인천을 오갔는데 오지 않는 버스를 더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아 발걸음을 돌렸다. 여전히 마음이 무겁다.


극장을 찾았다. 이창동 감독의 시. 낮시간이어서인지 극장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할머니들이 꽤 눈에 띄었다.

 

간병인 윤정희는 우리 엄마를 떠올리게 했고 단어를 자꾸 까먹는 윤정희는 테리아 엄마를 생각나게 했다. 


그러나 영화의 서사는 훨씬 복합적이었다. 밀양을 볼때도 내내 전도연이 응시하고 있는 감독이 느껴지더니

이번에도 삶을 바라보는 이창동 감독의 시선이 느껴졌다. 누군가 그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힘이 된다. 


영화를 보며 친절했던 학교 담임목사에게 세상과 동떨어진채 혼자 하나님 은혜에 가득차 웃고 있던 얼굴이 가증스럽다고 했던 친구의 말이 갑자기 떠오르기도 했다. 영화 중 가장 극적인 대목에서였다. 일방적인 것은 그 자체로 폭력이 될 수 있으니까. 소통되지 않는 것은 모두 아프다.

마지막 장면에서 괜히 노대통령을 생각했다.


혼자 커피를 마시려다 전직 기자이자 지금은 신촌 인근 로스쿨에 다니고 있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일을 하다 만난 사이지만 개인적으로 많이 좋아했던 친구이다.


함께 알고 있는 사람들 얘기를 하다보니 기자들 얘기, 국회에 있던 사람들 얘기가 한 바퀴 돌았다.


많은 기자들이 로스쿨로 진로를 바꿨다. 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진단했다. 직업의 특성상 젊은 나이에 기득권층만 상대하는 특권을 누리다, 나이가 들면 사회적 지위에 대한 상대적인 열등감을 느끼기 때문에 기자들이 또 다른 메이저의 길을 찾아 전향하는 것 같다고. 영리한 것들은 언제나 제 길을 잘도 찾아간다. 내가 어쩌다 당사자 앞에서 이런 속내를 숨기지 못했는지 모를 일이다.


나야말로 다시 메인스트림에 편입하기 위해 치열해져야 하는 건지, 내 페이스를 유지하며 한량처럼 살아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나는 그 속도와 치열함을 거부하며 저항이라 말하지만 세상은 나를 루저라 부른다. 

한동안 영어 공부를 하겠다고 나댔더니 글에 대한 감을 놓아버린거 같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버리게 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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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샨티퀸 트랙백 0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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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hampi 2010.05.26 18:00 신고

    오랜만에 글이 올라왔네요.
    무척 바쁘거나, 무척 재미있거나 뭐 그런줄로 알고 있었어요~
    묵은 때 벗겨진듯 비온 후 하늘이 반짝반짝댑니다.
    즐거운 하루~~~

  2. addr | edit/del | reply 샨티퀸 2010.05.26 20:37 신고

    함피님. 하루종일 홍대를 배회하며, 몇번인가 grape garden house를 방문할까 생각하다, 용기가 쪼금 부족해서 돌아왔습니다. 일종의 텔레파시인가.

  3. addr | edit/del | reply herenow 2010.05.27 13:49 신고

    뭔가 씁쓸하네요. 세상이 나를 뭐라 부르던 내 갈 길을 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좋아보이는 건 그렇게 사는 게 용기가 필요하고 쉽지 않기 때문이겠죠?

    • addr | edit/del 샨티퀸 2010.05.27 15:02 신고

      영화 시에 그런 대사가 나와요.
      너무 괴로운데 너무 힘든데 아름답다고요.
      씁쓸함을 안겨드렸다니 서둘러 이런 위로를 전해요.
      씁쓸하고 더러워도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