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13. 14:03ㆍ터키그리스 오디세이
[Revolutionary Road]
특별한 무대 위에 주인공이기를 바란다. 남들과 똑같은 삶은 죽기보다 싫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그래서 늘 여기가 아닌 그 어느 곳에 가면 나의 삶은 더 빛날 것이라고, 더 생생하게 살아 있을 것이라고 막연한 환상을 남몰래 키워나간다. 그 환상의 농도는 거의 신앙에 가깝고 그 증세는 열병과도 같다. 평상심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일이란 피 터지는 내적 갈등 뒤에 나온 표정관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일상을 버티다 만나는 하룻밤의 정사나 외도 따위는 해프닝에 불과할 뿐 삶의 궤도까지 바꿔놓지 않는다.
샘 멘데스의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여주인공 에이프릴, 비단 그녀만의 이야기는 아닐 거다. 에이프릴은 ‘여기’가 아닌 그 어디이기만 하면 되는 그곳, ‘파리’에서는 처음 사랑에 빠졌던 그때처럼 다시 가슴 뛰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남편 프랭크를 설득한다. 그러나 직장에서의 인정과 승진은 프랭크로 하여금 현실을 선택하게 만들고, 설상가상 에이프릴은 임신을 하게 되면서 파리행은 좌초되고 영화는 비극적 결말을 맺는다.
재밌는 것은 1년 뒤 샘 멘데스 감독은 어웨이 위고라는 영화를 발표했는데, 그는 자신의 전작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부부를 비웃기라도 하듯 주인공 커플을 가볍게 여행길 위에 올려놓는다. 에이프릴의 발목을 잡았던 바로 그 상황, 임신 6개월이라는 뒤뚱거리는 몸을 이끌고 말이다. 나의 서른넷에 부모가 될 준비는커녕, 현실감각도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기본적인 것도 모른 채, 곧 태어날 아이와 미래에 대한 불안을 그대로 안고 길을 떠난다.
어쩌면 감독은 풍요의 사회라 불리던 미국의 1950년대보다 모든 미래가 불확실한 불안의 시대 2010년이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물론 이동과 거주에 대한 선택권이 넓어졌다고 우리가 더 행복해졌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물음이지만 말이다.
[Away we go]
우리는 모두 여행을 꿈꾼다. 누군가에게는 자아의 신화를 찾아 떠나는 일생일대의 도전일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호기심 가득한 유희일 수도 있고, 어디로 갈지 몰라 떠도는 방황일 수도, 질식당할 것 같은 현실에 대한 도피일 수도 있다.
나도 언제나 여행을 꿈꿔왔다. 처음은 아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길에 올라 전 재산을 탕진하기를 반복한지 몇 차례. 여행의 끝을 확인해야 하는 그 허무함과 집도, 직장도, 통장잔고도 제로인 상태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현실의 절박함도 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도 여전히 떠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나는 또 한명의 에이프릴이다. 더 늦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언제나 나를 재촉한다. 30년 넘게 입어온 이 한국사회라는 문화의 옷이 내 몸의 일부가 되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고 말이다.
터키-그리스 두 달, 계획에 없던 폴란드-헝가리-슬로바키아-오스트리아에서 한 달, 포르투갈-스페인-모로코로 두 달 남짓 이어졌던 긴 여행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American Beauty]
떠나기 전 생각한다. 고개를 치켜 올리고 당당하게 걸어야지. 나의 롱 허리와 굽은 어깨를 바로 세우고 무심하게 말해야지.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가 되어야지. 강렬한 태양 앞에 얼굴을 가리지 말아야지. 소금기 가득한 바닷물에 몸을 띄워야지. 사막의 침묵에 귀 기울여야지. 마음껏 취하고 미친 듯 춤 춰야지. 바보같이 웃어야지. 다가오는 모든 인연에 마음을 활짝 열어야지. 다른 사람이 되어봐야지. 그렇게 또 다른 나를 만나고 돌아와야지...
첫눈이 오기 직전의 오후였다. 차가운 공기가 거리를 감싸고, 비닐 봉지 하나가 날아오른다. 놀아달라는 아이처럼 그렇게 15분 동안이나 춤을 춘다. 그때 알았다. 세상은 온통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샘 멘데스의 어메리칸 뷰티 한 장면이다. 그렇다. 영원으로 이어질 그 순간을 위해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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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 어떻게 알고 왔지? :) 아이 신나라!
심취해 읽다가 밥태웠다ㅜ
누룽지 끓여 먹었어? :)
매우 기대됨!! 허이차!
야, 쉬림프 허이차 이런건 십년 전 유머 아니야! :)
지금쯤 어디에 있으려나? 간만에 놀러왔는데 완전 염장 지르긴데^^. 부럽다, 상화야. 전자책 출판사 만들었는데 필자로 모시고 싶네 그려ㅋ. 또 놀러올게^^.
아, 너무 반갑다! 지금은 연남동에 있죠. 또 놀러오고 얼굴도 보자!
연남동으로 이사한 건가? 육아에 일에 지쳐서 빠른 시일에는 못 보겠지만 보고 싶네 그려ㅋ. 핸드폰도 두 번인가 고장나서 전화번호들을 다 날려버렸는데 여기로 연락하면 되겠네.ㅎ 독자로서 좋은? 여행기 기대합니다~
고마워. 홍대 언저리에서 함 보자 :)